
'수능, 출제의 비밀'은 수능 출제위원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차별화가 있다. 수능은 이제 입시와 사교육뿐만 아니라 지역과 계층 격차, 국가 보안까지 한데 묶인 중대사가 되어 버렸다. 출제 위원들은 한동안 외부와 단절된 채 수준 높은 문제들을 만들어야 한다. 중복 정답과 같은 치명적인 오류나 변별력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한동안 합숙하면서 그야말로 머리를 싸매는 것이다.
수능 출제위원들이라고 해서 권력 싸움이 없을 리가 없다. 영화는 그들이 TV에서 보는 정치꾼들과 별 차이가 없다고 본다. 출제위원장과 검토위원장의 인맥과 영향력에 따라 문제의 성격이 좌지우지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동명이인과 전산 문제로 얼떨결에 출제위원이 된 지방대 출신 교사 맹보람(이선빈)의 위치가 나쁘지 않다. 그녀는 명문대 출신도 아니고, 위원장에게 잘 보일 이유도 없기 때문에 자신 있게 공정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다른 출제 위원들은 이미 카르텔 안에서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침묵하는 상황이니 그녀의 존재가 더 빛날 수밖에 없다.
영화는 이런 상황을 코미디의 핵심으로 봤다. 모두가 출제 위원장에게 아부하는 상황에서 맹보람이 순진하게 이의를 제기하니 말이다. 물론 이런 전개는 여타 작품들에서도 익히 본 것들이지만, 이 영화는 풍자의 어감이 좀 다르다. 풍자의 대상이 그 누구보다 공정해야 할 수능 출제위원장 문주열(유재명)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사실상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있고, 그 권위에 기대어 아첨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맹보람이 그 권위로 인해 수능을 보는 전국 학생들에게 피해가 간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풍자의 힘이 생각보다 센 것이다.

다만 코미디 장르로는 느슨한 편이다. 아무리 협잡꾼에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출제 위원들이 '어이'를 '어의'와 헷갈리는 건 좀 지나친 것 같다. 아마도 전국 학생들의 운명을 가르는 이 출제 위원들을 지나치게 신비화하고 정당화한다는 점에 불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가 수능 출제위원들이라고 하면 완벽한 전문가라고 믿고 있지만, 중복 정답이 나오거나 비슷한 스타일의 문제가 나왔다는 뉴스를 간혹 접하고 있지 않은가. 때로는 전문가나 교수마저 풀 수 없는 난해한 문제가 있다는 뉴스에서도 충분히 야유를 보낼 만하다. 그들 역시 편견이 있고, 사적인 욕망이 있어서 권력관계 속에서는 판단이 흐려질 수도 있을 것이다.
검토 위원장 박경태(김영민)의 존재도 다소 아쉽다. 운동권 출신인 그가 사회적 문제에 관심 없는 이기적인 엘리트 문주열과 대립하는 모습은 한국 사회에서 익숙하고도 재밌는 재료다. 권력자 대 권력자의 자존심 싸움이나 순진한 맹보람을 이용하는 장면까지 갈등을 키울 요소들이 많아 보였다. 영화는 여기서 다소 엉뚱한 문제로 봉합해 버리는데, 맹보람의 위치마저 흔들거리면서 영화의 중심이 흐려질 위험성이 있다. 권력과 위선의 폭로가 아니라 사건을 편리하게 정리하기 위한 장치로 보여서 마냥 웃을 수는 없었다.

대신에 유재명의 대사에서는 어느 정도 곱씹어 볼 만한 대목은 있다. 수능이라는 중대사를 위해 전국의 부모들과 학생들이 들인 돈과 노력을 역설하는 장면은 꽤 날카롭다. 출제위원장을 연기한 유재명이 욕심 많은 빌런이긴 하지만, 이 대목에서는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누구 하나를 나쁜 사람으로 규정해서 풀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수능이 공정한 경쟁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사교육부터 시작해서 이미 경쟁 조건을 크게 흔들고 있는 모순이 드러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점 덕분에 유재명의 대사에서 영화의 의도가 더 선명해진다.
영화를 '배드 지니어스'처럼 스릴러 장르로 갔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외부와 단절된 출제위원들, 도청과 감시를 의식하는 폐쇄된 숙소, 누가 출제 문항에 접근했는지 알 수 없는 보안 시스템, 한 문항의 유출로 수많은 학생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공포 등등 이 정도 조건이면 밀릴 스릴러의 완벽한 무대가 될 수도 있겠다. 코미디 장르로 가려고 확신한 영화지만, 오히려 그런 결정이 아쉬운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
영화 '수능, 출제의 비밀'은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한국영화의 오늘 파노라마' 섹션에서 국내 최초 공개됐으며, 극장 개봉은 오는 28일이다. 엔딩 크레디트 이후에 나오는 쿠키 영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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