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출신 배우 패트릭 스튜어트가 세상을 떠났다. '스타트렉' 시리즈의 장 뤽 피카드 선장과 영화 '엑스맨' 시리즈의 프로페서 X로 전 세계 팬들에게 사랑받은 그는 향년 86세로 생을 마감했다. 휴 잭맨을 비롯해 마블 스튜디오와 동료 배우들이 잇달아 추모 메시지를 전하며 고인을 기렸다.
지난 29일(현지시간) AP통신과 할리우드 리포터 등 외신에 따르면 패트릭 스튜어트는 2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별세했다. 사인은 알츠하이머병과 루이소체 치매로, 유족 측 대변인 켈리 부시 노박은 고인이 아내 서니 오젤의 보살핌 속에 가족과 친구들 곁에서 평화롭게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고 밝혔다. 대변인은 고인이 생전에 보여준 헌신과 사랑을 언급하며 "음악과 기도, 눈물과 웃음, 그리고 그가 평생 우리에게 보여준 헌신만큼이나 깊은 감정 속에서 가족과 친구들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았다"라고 전했다.
패트릭 스튜어트는 1940년 영국 요크셔에서 태어났다. 12세 무렵 아마추어 연극단 활동을 시작했으며, 브리스톨 올드 빅 연극학교에서 연기를 공부한 뒤 본격적으로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영국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RSC)에서 14년간 활동하며 셰익스피어 작품을 비롯한 다양한 연극 무대에 올랐다. '햄릿', '템페스트', '맥베스' 등 고전 작품에서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였으며, 올리비에상 3회 수상과 그래미상 수상 등 연극과 낭독 분야에서도 성과를 거뒀다.
영국 연극계에서 탄탄한 경력을 쌓은 그는 1987년 미국 TV 시리즈 '스타트렉: 넥스트 제너레이션'의 장 뤽 피카드 선장으로 발탁되며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영국 연극배우였지만, 특유의 중후한 목소리와 지적인 카리스마, 절제된 연기로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스타트렉: 넥스트 제너레이션'은 7시즌 동안 178개 에피소드로 제작됐으며, 이후 극장판 영화와 후속 시리즈로 이어졌다. 패트릭 스튜어트는 장 뤽 피카드라는 인물을 통해 지성과 품격, 책임감을 갖춘 지도자의 상징적인 이미지를 구축했다. 2020년부터 공개된 '스타트렉: 피카드'에서도 같은 역할로 돌아와 오랜 팬들과 재회했다.
2000년에는 영화 '엑스맨'에서 돌연변이들을 이끄는 찰스 자비에 교수, 일명 프로페서 X를 맡으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 그는 인간과 돌연변이의 공존을 추구하는 프로페서 X의 신념과 따뜻한 리더십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며 캐릭터를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 잡았다.
울버린 역의 휴 잭맨과 보여준 호흡은 '엑스맨' 시리즈의 중요한 축이었다. 두 사람은 '엑스맨', '엑스맨 2', '엑스맨: 최후의 전쟁'을 비롯해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로건' 등 여러 작품에서 함께했다. 2017년 개봉한 '로건'에서는 노년의 프로페서 X를 연기하며 캐릭터의 마지막을 깊은 여운으로 남겼다. 이후 2022년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도 등장하며 마블 세계관과 인연을 이어갔다.
그의 연기 활동은 SF와 슈퍼히어로 장르에만 머물지 않았다. 영화 듄'(1984)에서는 거니 할렉을 연기했고, '라이프 포스', '엑스칼리버' 등에도 출연했다. BBC 드라마 '나, 클라우디우스'에서는 세야누스 역을 맡았으며, 애니메이션과 성우 활동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무대와 영화, TV, 애니메이션을 넘나든 60여 년의 경력은 그가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은 폭넓은 연기자였음을 보여준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동료 배우들의 추모도 이어졌다. '엑스맨' 시리즈에서 울버린을 연기한 휴 잭맨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패트릭 스튜어트와 함께한 사진을 공개하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휴 잭맨은 "오늘 우리는 무대와 스크린의 위대한 인물 중 한 명을 잃었다. 개인적으로 그는 더없이 훌륭한 친구이자 사람이었다. 그에게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패트릭 스튜어트, 평생 당신을 그리워할 것"이라고 적었다.
마블 스튜디오 역시 공식 추모 메시지를 발표했다. 마블은 "우리 모두는 패트릭 스튜어트 경의 별세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라며 "그는 비범한 품격과 지성, 인간미로 찰스 자비에 교수를 생생하게 구현했고, '엑스맨'부터 '로건', '어벤져스: 둠스데이'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대의 팬들에게 이 캐릭터를 각인시켰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독보적인 재능을 지닌 배우이자 함께 일하기에 너그러운 동료였으며 진정한 신사였다"라며 아내 서니와 자녀들, 친구들, 그리고 그의 예술을 통해 감동을 받은 전 세계 팬들에게 위로를 전했다.
마블 스튜디오의 수장 케빈 파이기도 고인을 기렸다. 그는 첫 번째 '엑스맨' 촬영장에서 패트릭 스튜어트를 처음 만났던 순간을 회상하며, 오랫동안 장 뤽 피카드로 알고 있던 배우가 실제로도 화면 속 모습처럼 뛰어나고 매력적이며 따뜻하고 너그러운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카메라가 꺼진 뒤에도 빛났던 유머 감각과 조용한 카리스마를 언급하며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을 큰 영광으로 여긴다고 밝혔다.
'어벤져스: 둠스데이'의 연출을 맡은 조 루소와 앤서니 루소 감독도 추모에 동참했다. 두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동경했던 배우와 함께 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패트릭 스튜어트를 독보적인 존재감과 변함없는 진정성을 지닌 전설적인 배우라고 표현했다. 스크린 안팎에서 인간다움을 가르쳐 준 그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안 맥켈런 역시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오랜 친구이자 동료였던 패트릭 스튜어트를 추모했다. 두 사람은 약 50년 전 영국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RSC)에서 함께 활동하며 인연을 맺었다. 이후 '엑스맨' 시리즈에서 각각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를 연기하며 영화 팬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안 맥켈런은 추모 글에서 패트릭 스튜어트의 정체성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영국 요크셔라고 강조했다. 고향에 대한 자부심은 그의 억양뿐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났다는 설명이다. 그는 패트릭 스튜어트가 진심을 숨기지 않는 사람이었으며, 자신에게는 믿고 의지할 수 있고 존경할 만한, 사랑하는 친구였다고 회상했다.
패트릭 스튜어트가 '스타트렉'의 주연 제의를 받았을 당시 나눴던 일화도 공개했다. 당시 이안 맥켈런은 런던 거리에서 만난 패트릭 스튜어트에게 미국 할리우드로 건너가면 영국에서 쌓아온 연극 경력을 잃을 수도 있다며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패트릭 스튜어트는 도전을 선택했고, 결과적으로 '스타트렉'과 '엑스맨'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맥켈런은 그가 국제적인 스타가 된 이후에도 셰익스피어, 입센, 아서 밀러, 해럴드 핀터, 사무엘 베케트 등 거장들의 작품에 출연하며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과 런던 웨스트엔드, 브로드웨이 무대를 누볐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미국을 새로운 고향으로 삼았지만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았다는 점도 강조했다. 특히 패트릭 스튜어트가 요크셔의 허더즈필드대학교 총장(Chancellor)으로 임명된 것을 그의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 중 하나로 꼽았다. 배우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뒤에도 고향과의 연결을 소중히 여겼다는 것이다.
패트릭 스튜어트는 오는 12월 개봉 예정인 '어벤져스: 둠스데이'에서 프로페서 X로 출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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