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7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후광'의 주인공이 된 배우 최강현은 택배 기사 민준의 삶을 보여주기 위해 8kg을 감량했다. 폭력을 저지르는 술주정뱅이 아버지, 정신이 온전치 못한 형, 택배 노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철없는 어머니가 민준의 몸을 야위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런 민준에게도 영화 감독이라는 꿈이 있었으니, 우연히 만난 점성가를 통해 후광을 따라 영국으로 떠날 계획을 세운다. 계획은 뜻대도 되지 않고, 민준의 삶은 오히려 위기에 몰린다.
배우 최강현이 짐승처럼 호흡하며 분노하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확신하지 못하지만, 꿈이라는 것을 상상하며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청년들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았다. 계획이라는 것이 늘 무용지물이 되는 것 같았을 때, 기약 없는 삶이 계속되는 것 같았을 때 폭발하는 그런 복잡한 감정 말이다. 배우 최강현의 눈빛이 여전히 기억에 남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강현의 열연 덕분에 영화의 의도대로 택배 기사들의 모습이 이전과 다르게 보인다. 민준처럼 택배 노동 속에서도 언젠가 이룰 꿈을 그리워하며 기록할 것이다.
아래는 배우 최강현과의 일문일답.
-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민준이라는 캐릭터에게 어떤 인상을 받으셨는지 궁금하며, 이 역할을 꼭 연기하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는 민준이가 처한 환경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족에 대한 압박감과 책임감, 특히 형을 바라보며 느끼는 서글픔 같은 것들이요. 이런 무거운 상황 속에서 민준이라는 인물이 하루하루를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버텨내고 있을지 안타까움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대본을 반복해 읽고 인물을 점차 구축해 나가면서 민준이는 단순히 처연한 환경에 갇힌 인물이 아니라, 그 혹독한 삶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향해 어떻게든 걸어나가는 ‘살아가고자 하는 힘이 아주 강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중학생 때 연기를 처음 시작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회의감과 실패, 아픈 순간들을 지나왔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연기를 손에서 놓았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묵묵히 버텨온 제 모습에서 민준이의 얼굴이 겹쳐 보였고, 하루하루를 진실하게 살아내는 인물의 내면에 깊은 감정과 노력을 연기해보고 싶었습니다."

- 787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되신 이후 실제로 택배 기사 분과 시간을 보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함께 보내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셨나요? 연기하실 때 가장 도움이 되었던 조언이나 경험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787 대 1 이라는 오디션 경쟁률은 캐스팅이 되고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보통의 오디션은 2~3 차까지 이어지는데, 1 차 오디션을 보고 며칠 지나지 않아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합격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연락을 받았을 때 정말 놀랍고 정말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캐스팅 직후 곧바로 집 근처 물류창고로 향했습니다. 민준이라는 인물을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그 직업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손동작과 습관, 그리고 그 일을 하며 쌓이는 경험과 생각까지 몸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물류창고 앞에서 몇 시간을 기다린 끝에 소장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소장님께서는 택배가 각 가정에 전달되기까지의 과정과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이어지는 기사님들의 하루 일과를 세세히 설명해 주셨고, 감사하게도 저와 또래인 20 대 택배기사님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그 기사님께 민준이라는 캐릭터를 간단히 설명해 드리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때 들었던 말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어린 기사님들 대부분이 현실의 삶을 버텨내는 동시에, 각자 자신만의 '꿈'을 이루기 위한 자금을 모으고자 이 일을 하고 계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민준이 역시 택배 일을 하고 있지만 단순히 노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소중한 시간을 통과해 가는 중이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 이재용이라는 대배우님과 함께하신 점이 큰 경험이 되셨을 것 같습니다. 배우님과 호흡을 맞추시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으셨나요?
"이재용 선생님과 현장에서 호흡을 맞춘 경험은 저에게 배우로서 너무나 뜻깊고 소중한 순간이었습니다. 이미 첫 리허설 때부터 선생님은 완전히 그 점성학자 캐릭터 그 자체로 대사를 하셨는데, 곁에서 그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내가 꿈을 이루려면 외국으로 떠나야 하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습니다. 실제 촬영에 들어갔을 때의 몰입감은 더욱 강렬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점성학자로서 한마디 한마디 말씀해주실 때, 그 순간 민준이 느끼는 서글픔과 간절한 바람이 제 안에서 일순간에 터져 나왔습니다. 특히 민준에게 "후광이 있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대목에서는 정말 무언가에 홀린 듯, ‘어쩌면 정말 저곳으로 가봐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깊은 확신과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납니다. 상대 배우의 존재감만으로 연기가 아닌 실제 감정에 이입하게 만드는 배우의 힘을 배운 현장이었습니다."

- 가방을 도난당했을 때 배우님의 연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연기하실 때 민준의 감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하셨나요? 촬영을 준비하면서 특별히 고민한 부분이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민준이의 삶이 ‘참는 것의 연속’이라고 느꼈습니다. 가족, 돈, 꿈이라는 것들이 하루를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인 동시에, 늘 내면에 가득 차 있는 묵직한 압박감과 책임감이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스스로 감정을 꾹꾹 삼키는 것이 몸과 마음에 아예 습관이 되어버린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택배를 도난당했을 때는 ‘이걸 잃어버리면 내가 고스란히 갚아야 한다’는 현실적인 다급함과 함께, 이미 유난히 벅차고 버거웠던 하루에 하필 이런 일까지 겹쳤다는 울분, 분함, 그리고 형용할 수 없는 서러움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던 순간이었습니다. 평소에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가던 인물이기에, 이 장면만큼은 겉으로 소리만 지르는 분노라기보다는 그동안 꾹꾹 눌러 담아왔던 삶의 무게가 울분으로 쏟아졌던 느낌이었습니다."

- 영화는 주로 민준의 택배 노동을 따라가고 있지만, 찬물로 씻는 장면도 있었고, 차의 짐칸에서 생활하는 장면도 많았는데요. 촬영 과정에서 감정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어려웠던 점이 있으셨나요? 또한 민준을 표현하기 위해 특별히 신경 쓴 부분도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신체적으로는 찬물로 씻는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촬영 당시가 12 월이라 정말 추웠는데, 영화가 핸드헬드 원테이크로 진행되다 보니 샤워 씬 역시 롱테이크로 진짜 차가운 물을 맞으며 촬영해야 했습니다. 추위 속에서 샤워를 하면서 ‘민준이에게 이 시간은 개운하게 하루를 씻어내는 게 아니라, 그저 버텨내야 하는 또 하나의 고단한 일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른 씻고 나가고 싶다는 솔직한 마음이 커졌었는데, 다행히 감독님께서 한 번에 OK 를 해주셔서 바로 몸을 녹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좁은 차 안에서 생활하는 빈곤함 속에 살아가는 인물이기에, 시각적인 현실감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감독님의 제안과 저의 필요성이 맞아떨어져 한 달 동안 8kg 을 감량했습니다. 감량을 한 상태로 찍다 보니, 영화 속 라면 먹는 씬에서 라면이 너무 맛있었던 나머지 감독님께서 "민준이치고 너무 맛있게 먹는다"라고 하셔서 다시 찍었던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감정적으로는 촬영 기간만큼은 카메라 온·오프와 상관없이 온전히 민준의 삶을 살아내려고 노력했습니다. 현장 밖에서도 감정의 끈을 놓지 않으려다 보니 인물이 처한 상황이 주는 무거운 중압감이 내면을 짓눌렀습니다. 특히 가족들을 만나는 장면이나, 형을 만나고 돌아선 이후에는 그 서글프고 무거운 감정의 잔상이 더욱 커져 한동안 마음을 가라앉히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 '후광'은 노영완 감독님의 강렬한 데뷔작이자 배우님에게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촬영을 마치고 민준을 연기한 소회와 앞으로 맡고 싶은 역할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후광>은 저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작품입니다. 영화를 통해 세계 여러 나라의 관객분들을 만나고, 저희 영화에서 감동과 앞으로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정말 기쁘고 오히려 제가 더 큰 감동을 받습니다. 영화가 우리에게 전할 수 있는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다시금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촬영이 끝난 지 어느덧 2 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민준이의 마음이 더욱 깊이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쉬는 시간에는 연기를 공부합니다. 어느새 연기 공부는 꿈을 놓치지 않기 위한 제 삶의 습관으로 자리 잡았죠. 이처럼 민준이는 저 자신이 될 수도 있고,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누군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민준이들’을 응원하고, 그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배우로서 저는 인물의 더 깊은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연기자가 되고 싶고, 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차기작에서도 삶의 무게와 깊은 감정을 안은 채 현실을 살아가는 인물,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누군가가 될 수도 있는 인물을 다시 한번 연기해보고 싶습니다."
영화 '후광'은 오는 11일 개봉 예정이다.


![[씨네진 인터뷰] '후광' 노영완 감독 "우리 자신이 누군가의 후광이 되길"](/_next/image?url=%2Fstorage%2Fcmukw3vym00002wtabj0pirbt%2Farticles%2Fdbe938d6-d204-4281-b4a6-6991e48b8bb8.png&w=1600&q=75)
![[씨네진 인터뷰] '7데이즈 7피플' 주인공 임진화 "배우 활동 더 하고 싶어…해외 공연 기획 중"](/_next/image?url=%2Fstorage%2Fcmukw3vym00002wtabj0pirbt%2Farticles%2Fcc93365c-e79d-4d2c-bc0f-fffd0d6e8418.jpeg&w=1600&q=75)
![[씨네진 인터뷰] '7데이즈 7피플' 정다원 감독,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그들에게](/_next/image?url=%2Fstorage%2Fcmukw3vym00002wtabj0pirbt%2Farticles%2F77c450b0-1be7-408d-93c1-dc911b16eaab.jpeg&w=1600&q=75)
![[씨네진 프리뷰] 도쿄영화제 수상작 '후광' "혹독하고 매혹적인 데뷔작"](/_next/image?url=%2Fstorage%2Fcmukw3vym00002wtabj0pirbt%2Farticles%2F612721b3-41d8-4d15-8526-ec9b7feffad8.jpg&w=1600&q=75)
![[씨네진 인터뷰] "조금이나마 쉬는 시간이 되었으면" '흐르는 여정' 김진유 감독이 전하는 안식](/_next/image?url=%2Fstorage%2Fcmukw3vym00002wtabj0pirbt%2Farticles%2F518cec89-8773-4344-b034-ea3e5e1fb1ad.jpg&w=1600&q=75)
![[씨네진 프리뷰] '오펀' 이사벨 퍼만, 밀폐 창고서 목숨 건 사투…'유닛 234' 어떤 영화?](/_next/image?url=%2Fstorage%2Fcmukw3vym00002wtabj0pirbt%2Farticles%2F3045e828-6757-4d88-af50-1e9b29f37f89.jpg&w=1600&q=75)

![[리뷰+후기] '토이스토리5' 여전히 소중한 존재이고 싶은 고백…쿠키 영상 몇 개?](/_next/image?url=%2Fstorage%2Fimports%2Fcmukw3vym00002wtabj0pirbt%2Fcineview%2F5dde865e97029bba01fa047205c694b69dcbb91a6988d41be474a4f7bc67efcb.jpg&w=1600&q=75)
![[리뷰+후기] 백룸, 공간 공포는 성공·심리 공포는 미완…쿠키 영상은?](/_next/image?url=%2Fstorage%2Fimports%2Fcmukw3vym00002wtabj0pirbt%2Fcineview%2F35ae3346e26d7ae174b7a5ae6e37d911e84e4c66b102a5383fbb1989d9460b51.jpg&w=1600&q=75)
![[리뷰+후기] 옵세션, 인디 네버레티의 등골 오싹해지는 열연…쿠키 영상은?](/_next/image?url=%2Fstorage%2Fimports%2Fcmukw3vym00002wtabj0pirbt%2Fcineview%2F554eec22f5eec8e7200c27d366c7789e376d47fe10bb8d16d508500e6241b4fc.jpg&w=1600&q=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