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유 감독은 '흐르는 여정'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쉬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영화는 남편과 사별한 노년의 여성, 독일로 입양되었다가 생모를 찾으러 온 젊은 남성, 가난한 음악학도, 이렇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세 명의 만남을 잔잔하게 그려냈다. 감독이 말한 것처럼 따뜻한 말 한마디로 시작된 세 사람의 인연은 혈연이 아니더라도 가족과 같은 연대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별과 그리움, 가난과 고독을 그리면서도 영화는 마지막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누구에게 쉽게 마음을 열 수 없을 정도로 불신의 시대다. 일상의 작은 순간이라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된다면, '흐르는 여정'의 주인공들처럼 조금이나마 안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김진유 감독은 동네 주민들과 주고받는 인사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며, 영화로도 그 소중한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퍼펙트 데이즈'의 야쿠쇼 쇼지처럼 일상의 작은 순간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것 같다.
아래는 김진유 감독과의 일문일답.
- 남편과 사별한 노년의 여성과 해외에 입양됐다가 친모를 찾으러 한국에 온 젊은 남성의 만남이 신선합니다. 서로 다른 삶의 궤적을 지나온 두 인물이 피아노를 매개로 가까워지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는데요.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인물의 만남을 어떻게 구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농인이었던 남편이 가지고 있는 흥미로운 사물이 무엇이 있을까?' 상상했어요. 첫 번째 생각은 황당했으면 좋겠고, 두 번째 생각은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었어요. 동시에 민준이라는 인물이 흥미를 가질 만한 것이어야 했어요. 그랜드피아노를 집 안에 가지고 있는 건 흔치 않으니까요.
피아노를 지켜보다가 춘희를 알게 되는 민준과 '피아노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 중 만나게 된 민준, 어떻게 보면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사이에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느껴요. 사물이 아니어도 말, 그리고 눈빛으로 인사를 나누고 만나게 되는 것이요."

- 저스틴 민은 영화 '애프터 양'과 넷플릭스 드라마 '엄브렐러 아카데미'와 '성난 사람들'에도 나올 정도로 해외에서도 유명한 배우입니다. 특별히 저스틴 민을 캐스팅한 이유가 있었나요?
"캐스팅할 당시에는 <애프터 양>만 본 상황이었는데, 민준 캐릭터에서 중요했던 건 이방인의 정서였어요. 디아스포라적인 면이요. 저스틴 민은 한국계 미국인이니까 그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캐스팅은 저의 선택도 있지만, 배우의 선택이 제일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함께해 준 저스틴 민에게 고마울 따름이죠."

- 김혜옥은 오랫동안 안방극장에서 모성애를 대표하는 배우로 활약했습니다. 어찌 보면 애초부터 이런 따뜻한 영화에 꼭 필요한 배우였던 것 같은데, 캐스팅하신 계기와 비하인드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춘희의 완성에는 김혜옥 배우님이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캐스팅도 시나리오를 전달하고 기다리는 것 밖에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저스틴 민과 마찬가지로 배우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촬영하면서는 '이 연기 잘하는 배우가 왜 영화에서 많이 보지 못했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흐르는 여정>에 함께 해서 너무나 감사한 마음을 많이 가졌었고 '잘 만들어야겠다' 다짐했어요."

- 삶과 죽음, 이별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신파에 치우치지 않고 담담하게 풀어간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연출 방식에 대해서 특별히 고민하신 부분이 있으셨나요?
"제가 생각하는 영화에서 중요한 점은 인물과 인물의 거리감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한 삶과 죽음, 이별을 담고 있다 보니 보는 이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았고 '같이 한번 생각해 봅시다'라는 마음으로 연출하다 보니 담담한 연출이 된 것 같아요. 영화라는 것이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극장에서 보실 때 남편이 남긴 곡에서 울림이 있기를 바랐어요. 아마도 앞쪽 자리에 앉으신 분들과 함께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돼요."

- 문춘희 씨와 감독님 아파트 주민들과 촬영했다고 들었습니다. 덕분에 반상회 장면이 구수하고 훈훈한 면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반인들의 참여가 영화 구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그리고 모티브가 된 문춘희 씨의 반응도 어땠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비전문 배우들이 등장하면서 현실감을 더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관객들을 무장해제하게 하는 마음이랄까요? 덕분에 영화가 더욱 풍성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름을 빌려왔지만 제가 작은 정원 언니들의 지지와 응원을 많이 받아요. 동네에서 거닐면서 만나서 주고받는 인사와 몇 마디가 하루를 기분 좋게 해주거든요. 그럴 때마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생각합니다. 언니들의 반응을 듣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누구보다 기뻐해 주었으리라 생각해요. 언니들 오래오래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 결국 이 영화는 혈연이 아니더라도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연대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요. 감독님께서는 관객들이 어떤 감정을 품고 극장을 나오길 바라시나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말로 따뜻함을 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가족에게든 친구에게든 한마디씩 던지면 좋겠어요. <흐르는 여정>을 보는 순간에는 조금이나마 쉬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흐르는 여정'은 오는 28일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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