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연기는 '출력값'이 아니다…다가올 AI 배우 시대에 던지는 질문

틸리 노우드 논란이 던진 질문…기술적 대체를 넘어 '배우의 본질'을 묻다

사진=틸리 노우드 인스타그램
사진=틸리 노우드 인스타그램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연예 전문 매체 데드라인에서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나왔다. AI 배우 틸리 노우드가 영화 '미스얼라인(Misaligned-어긋남)'에 주연으로 출연한다는 소식이었다. 이 영화는 AI 틸리가 악성 봇 때문에 욕망과 충동을 키우게 되면서 겪는 일을 그린 작품으로 전해진다. 네덜란드의 배우 겸 프로듀서 엘린 판데르 펠덴이 설립한 영국 제작사 파티클6에서 제작 중이다.

이제 AI가 영화 생태계를 위협한다는 우려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위와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할리우드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에서는 "노우드는 배우가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배우들의 연기를 훔쳐서 실직 상태로 내몰 것이며 인간의 예술성마저 훼손할 것이라는 예상 가능한 비판 성명을 내놓은 것이다. 이에 펠덴은 겨울왕국의 엘사를 예로 들면서 CG 캐릭터처럼 다룰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의 논란들을 봐도 대부분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가고 있다. AI가 배우 대신에 감정적인 연기를 하면서 관객들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의 본질은 무엇인가. 영화사에서 배우의 자리는 여러 번 변화했다. CG로 만든 배우, 모션 캡처 배우, 디지털 캐릭터, 얼굴 합성 등등 여러 형태가 등장했다. '반지의 제왕'의 골룸의 경우도 앤디 서키스라는 배우의 연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디지털 캐릭터였다. 관객들은 대부분 골룸의 연기를 어색하다고 보지 않았다. 앤디 서키스라는 배우가 뒤에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디지털 캐릭터인 골룸에게 감정적으로 몰입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단순히 AI가 인간을 대체한다는 것보다 배우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지 묻는 것이 더 정확한 질문일 것이다.

영화 '밀양(2007)'에서 전도연이 하늘을 바라보며 하느님을 원망하는 표정 연기를 생각해 보자. 관객들은 전도연이라는 배우의 열연을 보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언젠가는 AI 배우도 전도연과 같은 복잡한 내면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전도연이라는 배우의 데이터를 통해 얼굴, 표정, 움직임, 목소리를 생성하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배우'라는 존재의 조건을 갖춘 셈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관객의 감정이다. 만약 '토이스토리'의 우디 뒤에 톰 행크스의 목소리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톰 행크스의 포근하고 친근한 목소리가 사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활용한 제작사의 프롬프트로 만들어진 AI라면 아마 대부분의 관객들은 불편해질 것이다. 단순히 기술로 대체한다는 것에 문제가 아니라 관객이 인간의 흔적이 없는 연기에 감정을 느낄 수 있는지 고심해 봐야 할 것이다.

여기서 섬뜩한 질문으로 넘어가 보자. AI에게 배우에 대한 여러 의견을 들어보면 인간 배우들을 순수한 인간으로 볼 수 있는지 반문하고 있다. 배우도 사실 감독의 지시를 받고 각본에 따라 움직인다는 논리를 내세워서 '현실의 인간'이 아니라 '영화 시스템'이 만들어낸 이미지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AI 배우를 낯설게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AI의 이런 논리는 배우의 땀과 노력을 무시하고 '이미지'에만 한정한 매우 차가운 시선이다.

배우의 연기는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다. 역할에 몰입하기 위해 체중 감량을 하고, 몇 달 동안 특정 직업을 연구한 경험을 바탕으로 감정을 끌어낸다. AI가 의견을 낸 것처럼 단순히 화면상에서는 '이미지'로 보일 수 있겠지만, 그 결과 뒤에 있는 배우의 땀과 노력, 여기에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까지 함께 소비된다. 덕분에 관객들은 배우의 단순한 표정 연기 덕분이 아니라 역할에 몰입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보내게 된다.

AI 배우로 쉽게 대체가 된다면 인간 배우도 결국 입력값에 따라 움직이는 시스템이 아니냐는 굉장히 섬뜩한 논리가 나오게 된다. 인간을 일종의 기계처럼 보는 셈이 된다. 관객도 알다시피 지금의 배우들은 자신의 경험, 무한한 상상력,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감정, 남다른 해석을 통해 연기에 뛰어든다. AI가 말한 대로 감독의 지시를 받고 각본대로 움직이지만, 작품을 해석하고 치열하게 연구한다.

제3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 열린 AI 국제 콘퍼런스에서는 "미래의 영화가 스튜디오가 아니라 서버에서 만들어진다"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제 복잡한 컴퓨터 언어 없이 한국어 기반으로도 영화 수준의 화면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지난 2월 공개된 틱톡의 모기업, 바이트댄스의 '시댄스 2.0'이 만들어낸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의 결투 영상은 큰 충격에 빠뜨린 바 있다. 곧 나올 2.5는 기존 4~15초에서 30초에서 최대 180초의 영상을 제작할 수 있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의지와 상관없이 AI를 받아들여야 한다. AI 국제 콘퍼런스에서 연설을 한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의 말대로 우리가 AI에 관심이 없어도 AI가 스스로 우리에게 찾아올 것이다. 에이전트 AI를 돌리는 시대가 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 누구도 쉽게 예측하지 못한다. 만약에 AI 배우가 정말 뛰어난 연기를 한다면, 일부 관객들은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그런 면에서 단순히 이 문제를 AI가 배우를 대체하는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관객들이 AI의 연기에 감정을 맡길 수 있느냐의 문제로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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