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후기] 세로 화면에 담긴 감동…자극 없이 파고드는 '아버지의 집밥'

숏폼 드라마의 자극적 문법을 깨고 완성된 가족극

사진=(주)레진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주)레진엔터테인먼트 제공

극장용 '아버지의 집밥'은 원작 웹툰을 원작으로 한 숏폼 드라마라서 세로형 화면으로 나온다. 흥미로운 건 에피소드들을 모두 이어 붙인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에 숏폼 드라마의 인상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다음 회를 보고 싶게끔 자극적이거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설정이 딱히 보이지 않는데도 지루하지 않고 무리 없이 감상할 수 있었다. 40년 동안 평생 집밥을 하던 아내를 위로하는 남편의 클래식한 이야기인데도 꽤 감동적이다.

아내 안순애(이정은)는 구두닦이를 하며 가족을 부양한 남편 고하웅(정진영)을 위해 40년 동안 군소리하지 않고 집밥을 만들었다. 그러던 안순애가 알츠하이머병으로 갑자기 요리하는 방법을 잊었다고 하자, 고하웅이 난생처음으로 요리를 배우는 것이다. 안순애는 요리에 실패하면 벌점을 주고, 10점이 되면 이혼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개와 늑대' 이솝 우화가 떠올랐다. 굶주린 늑대가 윤기가 나는 개를 부러워하다가 목의 털이 벗겨진 흔적을 보게 된다. 개가 실컷 먹는 대신에 목줄에 묶여 지낸다고 하자, 늑대는 자유가 없는 배부름은 싫다고 말한다. 이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보면, 목줄에 묶이면 실컷 먹을 수는 있겠으나, 마음은 풍요롭지 않다는 뜻이다. 안순애의 밥상은 늘 풍요로워 보였지만, 40년 동안 존중받지 못해서 늘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솝 우화에 비유하면 개 밥상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늘 배를 불리는 음식은 있지만, 자유와 평안이 없는 상태. 남편 고하웅이 밥상을 뒤엎은 그 기억은 안순애에게 평생 마음의 상처가 됐다.

고하웅도 자유로운 사람은 아니었다. 청년 시절부터 구두닦이를 하며 온갖 모욕을 견디며 살았다. 일을 하면서 받은 수치심을 견딜 수가 없어서 아내에게 화풀이를 한 것이다. 구두 하나라도 닦겠다고 무릎까지 꿇었으니, 아내가 만든 집밥이 맛이 좋을 리가 없다.

드라마는 이런 이솝 우화의 교훈을 곳곳에 배치했다. 안순애뿐만 아니라 손녀의 입에서도 여러 번 나오는데, "싸우면 음식이 맛이 없다"라든가 "밥을 먹을 때는 분위기가 좋아야 맛있다"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말들이다. 재밌는 건 부부의 현실적인 문제를 놓고 이런 대사가 나오니까 단순하면서도 오히려 본질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맛이 꼭 황금 레시피로 이뤄지지 않고, 함께하는 사람들 사이의 화목한 분위기가 만든다는 것. 어른들이 아이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건, 이런 너무나 당연한 사실들을 자꾸 잊어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고하웅이 요리를 못해서 벌점을 받는 설정은 귀엽고 코믹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안순애가 원했던 건 훌륭한 요리가 아니라, 40년 동안 자신이 해온 일들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배달음식이 들키거나 머리카락이 나왔다는 이유로 벌점을 먹이는 장면이 웃기면서도 짠한 이유다.

사진=(주)레진엔터테인먼트 제공

드라마의 결이 분명 80~90년대 가족 드라마와 같은데 울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적인 이유로 아내에게 분노를 폭발하는 남편, 아이들 때문에 억압과 압박을 견뎌야 했던 아내. 이혼하고 싶지만, 애증의 관계 때문에 결국 함께할 수밖에 없는 부부의 모습은 숱하게 봤다. 그런데도 이 드라마가 좋은 것은 그 감성을 마냥 향수로 소비하지 않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이다. 마지막 결말에서 나오는 변요한의 내레이션은 이 작품의 높은 완성도를 말해주고 있다. 그저 고하웅과 안순애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가난과 노동 속에서 버텨온 우리 장년들을 위한 위로이기도 하니까.

2시간이 넘는 동안에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여타 숏폼 드라마처럼 매 회 극적인 사건이 있었던 게 아니라, 집밥에 대한 감성을 조금씩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오래된 드라마 문법을 쓰면서도 현대인들에게 통하는 따스한 감성이 결합하니, 세로형 숏폼인데도 낯설지 않고 오히려 신선하게 보인다.

'아버지의 집밥'은 이번 달 '레진스낵'을 통해 공개되며, 오는 9일에는 롯데시네마에서 단독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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