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국제도서전'은 이제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도서 전시회가 되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수많은 독서가들이 모이며 화제를 끌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평산책방은 돌베개와 함께 정치와 관련된 도서들을 전시하였으며, 이날 25일에는 유시민 작가, 탁현민 연출가와 함께 북토크를 열며 눈길을 끌었다. 그 밖에 민음사, 오팬하우스, 문학수첩, 황금가지, 시공사, 김영사, 위즈덤하우스 등 인기 출판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입구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문학수첩 부스는 오래된 도서관이나 마법사의 서재를 옮겨놓은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분홍빛 네온 간판에 적힌 '탐험가 책장', '명탐정 책장' 등은 부엉이와 촛불, 모래시계, 지구본 장식으로 귀여운 이미지를 선보였다. 해리포터의 경우 초판 디자인과 양장본, 각종 굿즈 등을 하나의 세계관처럼 진열했다. 독서가들을 자연스럽게 판타지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만들었다.

각 도서에 맞게 제작된 부적은 웃음을 준다. 광하회귀의 '살이 찌면 외공을 수련하면 된다. 완벽한 해결 방책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돼지처럼 먹었다'를 인용하여 '다이어트 성공 부적'을 제작했다. 그 밖에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헤르미온느 그레인저가 친구가 된 문장과 함께 '평생친구 부적', '내가 없는 나의 세계'에서 토미와 레이철의 만남 문장과 함께 '모쏠 탈출 부적'을 제작했다. 각 도서에 대한 마케팅이 인상적이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직원들의 추천 메모였다. 단순히 '베스트셀러'라는 홍보에서 벗어나 손 글씨로 된 메모는 자연스럽게 발길을 멈추게 한다. 해리포터 미나리마 에디션이 입고됐다는 손 글씨가 특히 눈에 띈다. 미나리마는 두 디자이너 미라포라 미나와 에두아르도 리마의 성을 합친 스튜디오 이름이다. 두 사람의 일러스트와 팝업북 요소가 들어간 해리포터 미나리마 에디션은 소장용 아트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으로 알려진 '쌤앤파커스'는 빨간색 진열대로 색을 통일하면서 오롯이 책에 집중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존에서는 대형 포토존과 굿즈 등을 연결하여 하나의 세계관처럼 묶여 있었다. 특히 백화점 건물처럼 둥글게 세워 놓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소설 속 공간을 현실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굿즈에서는 '구매욕 브레이크 고장 구역'이라는 센스 있는 문구로 눈길을 끈다. 그 외에 서점괴담, 기이한 골동품 상점, 급매 106동 101호 등 강렬한 표지를 동반한 책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쌤앤파커스'는 책을 가장 주인공으로 만든 부스라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단순한 베스트셀러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브랜드로 확장하는 모습이다.




서울특별시교육청 도서관·평생학습관 부스는 동네 도서관을 이용하는 독서가라면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출판사는 책을 홍보하는 공간이지만, 이곳은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소개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우리 동네 도서관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발길을 옮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부스 위에는 파란 천이 물결처럼 이어져 있다. '책의 파도'라는 주제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점이 마음에 든다. 마치 서울시 도서관의 물결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서울시교육청 산하 23개 도서관과 평생학습관이 지도 위에 표시되어 있는데, 가장 인상적인 점은 각 도서관마다 작은 수납함을 만들었다는 점. 열어보면 각 도서관에 맞는 개성적인 도서가 안에 들어 있어 웃음을 준다. 평소 이용하는 공간이 전시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반가울 것이다. 보통 도서관에 들어서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QR코드를 통해 간단한 독서 성향 테스트도 할 수 있다.


오팬하우스는 출판사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준 부스 중 하나였다.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꾸며진 부스는 멀리서도 금세 눈에 들어왔다. 벽면에는 영화판 전광판을 연상시키는 'NOW SHOWING'이 보이고, 그 아래에는 '퇴마록',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와 같은 대표 작품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마치 극장 로비에 들어오는 듯한 분위기였다.
공포와 미스터리, 스릴러가 하나의 세계관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강렬한 원색 표지들이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역시 '퇴마록'이었다. 리커버 에디션부터 새롭게 출간된 시리즈까지 한자리에 모여 있었고, 책등을 이어놓았을 때 하나의 거대한 붉은 문양이 완성되는 연출도 인상적이었다. 그 옆으로는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 '입에 대한 앙케트', '파이로매니악' 등 장르 소설들이 나란히 진열돼 있었다. 특히 손바닥 모양으로 작게 나온 '입에 대한 앙케트'는 독서가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자연스럽게 집어 들 수밖에 없는 기묘한 매력이 있었다.
오팬하우스의 굿즈 판매 마케팅도 인상적이었다. '독서로의 도피'가 적힌 티셔츠와 에코백, 책갈피, 키링, 카드지갑 등 굿즈도 함께 전시했다. '책을 포기하지 마십시오'라는 문구가 적힌 '맥세이프 카드포켓'처럼 독서 문화를 위트 있게 풀어낸 점도 웃음을 준다. 영화처럼 추천한 큐레이션도 흥미로웠다. 영화 관람 등급처럼 'ALL', '20·40대', '오컬트', '도파민', '범죄', '힐링'으로 분류했다. 독자가 자신의 취향에 맞게 작품을 고를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다.




김영사 부스는 '스트레칭 존'이라는 콘셉트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부담 없이 가볍게 시작하는 독서 스트레칭이라는 차원으로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상으로 제안하고 있었다. 어려운 고전보다는 소설과 에세이, 미스터리 등 가벼운 장르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큐레이션을 구성했다. 이곳 역시 책마다 붙어 있는 손글씨 추천 메모가 돋보였다. '최근 읽은 책 중 가장 좋았다', '이 장면 때문에 끝까지 읽었다', '이런 독자에게 추천한다' 같은 직원들의 짧은 감상이 적혀 있었다. 한편에는 헬스장을 연상시키는 사물함 형태의 전시도 마련됐다. 몸을 단련하듯 독서도 꾸준히 해야 한다는 콘셉트를 시각적으로 풀어냈다. 작은 전시 공간처럼 꾸며져 관람객들이 사진을 찍으며 즐기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평산책방'과 돌베개 부스는 책장 안쪽에 긴 타임라인처럼 이어지는 투명 아크릴 패널을 설치해 놓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책 제목과 간단한 소개 문구가 적혀 있었는데, 조명이 아래에서 은은하게 비치면서 글자가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여 전시 효과가 의외로 좋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추천 도서와 함께 유시민, 노무현, 김대중 등 진보 정치인들을 주제로 한 책들도 함께 구성됐다. 앞치마, 책갈피, 고양이 키링 굿즈 등도 판매하고 있었다.



이제 '서울국제도서전'은 책 문화 축제가 된 기분이다. 예전에는 출판사들이 책을 전시하고 계약을 맺는 행사 이미지가 강했으나, 이제는 출판사마다 위트 있는 마케팅을 하고 있고, 독서가들이 오래 머물도록 동선을 설계하고 있다. 이번에도 여성 독서가들의 존재감이 정말 컸다. 체감으로는 70% 이상이 여성으로 보였다. 한국 출판 시장의 소비층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체감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출판사들이 여성 독서가를 중심으로 큐레이션과 굿즈를 설계하는 이유도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이해됐다.
여전히 종이책 산업은 어려운 면은 있으나, 책을 중심으로 한 문화는 오히려 더 풍성해지는 것 같다. 올해 '2026 서울국제도서전'이 그 변화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사람들이 '읽는 삶'을 경험하고 공유하는 문화 축제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한편 '2026 서울국제도서전'은 지난 24일부터 오는 28일까지 코엑스에서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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