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사의 속삭임'은 과학과 진화생물학, 심리학까지 정교하게 결합한 공포 소설이다. 기시 유스케의 대중적인 작품은 '검은 집', '악의 교전', '신세계에서'라고 할 수 있으나, 이 소설 역시 뛰어난 문체를 뽐내는 몇 안 되는 작품이다. 제목처럼 문장이 묘하게 아름답고 관능적이라서 쉽게 빠져들어가는 소설이다.
'검은 집'은 현실에 존재할 법한 사이코패스의 공포였고, '악의 교전'은 더 나아가 사이코패스의 섬뜩한 심리를 대중적인 문법으로 풀어냈다. '천사의 속삭임'은 인간이 느끼는 고통을 다루면서 더 진화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고통을 강제로 없애면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나?' '인간이 느끼는 공포는 진짜 실체가 있는 것일까?'와 같은 철학적인 질문을 하고 있어서 묘하게 여운을 남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존 조사단이었던 다카나시는 여친이자 주인공인 기타지마 사나에 앞에서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본래 그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식습관까지 꼼꼼히 챙기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아마존에 다녀온 뒤로 폭식을 하고 병적으로 쾌락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죽음에 대한 동경까지 드러내자 사나에는 점점 공포를 느낀다.
책을 읽다 보면 점점 더 무서운 사실이 드러난다. 단순히 다카나시가 미친 것이 아니라 그의 숨겨진 본능이 제어 없이 노출된다는 게 무섭다. 마치 짐승처럼 '제어'가 되지 않자 그것을 '행복'으로 느껴 버리는 것이다. 이건 마치 인간에게 필요한 장치가 몇 군데 빠져나간 증상 같다. 이것이 이 작품의 핵심 공포다.
지금도 기억나는 거미 청년은 이 작품에서 꽤 상징적이다. 이름은 오가노 신이치,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을 즐기는 청년으로 어머니의 과도한 교육열로 공부를 포기하고 무료하게 지내고 있었다. 게임을 즐기던 중에 짝사랑하는 여성을 따라 치유 세미나라는 곳을 갔다가 다카나시와 같은 증세를 보인다. 무서운 것은 이 청년이 평소에 거미를 매우 싫어했다는 것. 이후에 이 청년의 운명은 상상에 맡기겠다.
인간의 고통을 과연 제거할 수 있을까? 공포를 유발하는 소설 속 논리는 꽤나 충격적이다.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고통 때문이니까 공포, 불안, 죄책감, 슬픔 같은 것들을 제거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아주 위험한 주장이다. 지금도 항우울제와 진통제 등이 있으니 얼핏 들으면 틀린 말은 아니다. 고통을 줄이고 쾌락을 주는 약물도 있으니 말이다.
작가는 이렇게 묻는다. 그 과정에서 인격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다카나시와 신이치가 상징적인 캐릭터다. 이들은 두려움이 없어지자 인간으로서 있어야 할 생존 본능도 사라지고 말았다. 누구에게나 있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면 그것이 매혹적으로 보이고, 결국 인간에게 필요한 생존 본능이 제거되는 것이다.
기시 유스케의 다른 작품들도 좋지만, 이 소설은 유난히 문장이 유려하고 세련돼 보인다. 제목처럼 문장으로 유혹하여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가장 무서운 작품으로 꼽히는 '검은 집'과 재기발랄한 SF '신세계에서' 중간쯤에 있는 진짜 기시 유스케다운 소설로 보인다. 소설의 아이디어도 훌륭해서 AI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꽤 현대적으로 읽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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