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체 일부를 잃어버리는 무서운 바이러스가 있다. 전신으로 퍼지면 마치 양초가 녹듯이 물이 되어 버린다. 생각만 해도 섬뜩하고 서늘하다. 가장 사랑하는 자식이나 부모, 연인이 사라질 수 있다는 공포와 상실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동시에 완전히 끝나지는 않는다. 물은 담을 수 있고, 흐르고 섞이면서 언젠가는 다른 모습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품고 있지 않을까.
'겨울통'의 주인공 인하와 동아는 가장 편안한 언어로 가까워지며 연인이 되었다. 말을 못하는 인하에게 음성 출력 장치는 세상과 원활하게 소통해 주는 유용한 도구지만, 동아에게는 인하의 진짜 목소리로 느껴지지 않았다. 인하가 쓰고, 그 아래에 동아가 답을 붙이며 애정이 생기는 묘사는 꽤 섬세하다. 우리가 흔히 쓰는 메신저 대화가 서로에게 남기는 각별한 문장처럼 보이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그 대화는 공중으로 사라지면 안 되니까.
서로의 말 밑에 다음 말이 붙는다는 표현이 새삼 좋은 이유는 무엇일까. 바쁜 현대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처럼 이해한 척하며 기만하거나, 너무 쉽게 누군가의 말에 대해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않고 그 말 아래에 조심스럽게 자신의 문장을 놓는 느낌이 아닐까. 동아는 마치 벽 앞에 조용히 앉아서 기다리는 사람 같았다. 인하는 그런 방식으로 자신에게 조용히 스며드는 동아가 좋아졌을 것이다.
두 사람이 만난 '소랑'은 주민등록을 옮기면 임시 거처까지 제공할 만큼 인구가 없는 도시다. 동아에게 소랑은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관광지가 아니라 너무 많은 관계와 기대에서 비껴갈 수 있는 장소였다. 동아처럼 지친 사람은 일단 아무것도 좋아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필요할 때가 있으니까.
그런 동아가 이제 바다가 좋아지기 시작한다. 비록 말은 못하지만, 소랑의 아이들에게 재능을 이끌어주는 인하의 모습을 보면서 잃어버린 감각의 능력을 되찾는 것이다. 이전에는 무심히 지나가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소랑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동아가 소랑 안에서 살아갈 이유를 찾은 것이다.
작가는 떠오르는 묘사가 없다고 했으나, 도서관에 배치된 책 소독기를 나방으로 묘사한 점은 꽤 매력적이었다. 책 소독기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를 살피며 생물 같은 것으로 감지하는 활유법은 도서관의 정서를 달라지게 만들 것이다. 빛을 받으며 펄럭이는 책이 마치 빛에 이끌린 곤충처럼 보이는 모습. 이미지와 감정을 연결하는 이런 시선 덕분에 사람이 물로 변해진다는 설정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정확히 기억이 난다. 울어 버리면 양초처럼 녹는 소년의 이야기는 겨울통으로 엄마를 잃어버린 한 소년의 창작물이다. 인하와 동아가 가르치는 이 소년은 겨울통으로 어머니가 물이 되어 사라졌지만, 어떻게든 어머니를 다른 형태로 남아 있게 바꿔놓았다. 겨울통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 병이지만, 이 몇 줄 안 되는 이야기로 책 속에서 절박한 감정을 발견했다. 어른들은 죽은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믿지만, 아이들은 통용되는 규칙을 바꿔서라도 결말을 바꾸고 싶어 하는 동심이 있으니까.
이런 무모함과 환상이 이 작품의 가치와 연결되는 것 같다. 현실적인 사람은 동아가 물이 되었을 때 남들처럼 애도했을 것이다. 소년처럼 시적인 글을 쓰며 어떻게든 동아의 존재를 남기고 싶었을 수도 있다. 대신에 인하는 동아가 물이 될 때를 대비해 튜브를 준비하고, 다시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합리적이지도 않고, 터무니없는 계획으로 들린다. 그런데도 사랑은 종종 그런 쪽으로 밀어붙인다. 기적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누군가가 끝까지 움직이게 하는 믿음일 수 있으니까.
세상은 대개 적정한 거리를 두고 포기를 권하는 것을 현명하다고 말하지만, 이 소설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바보 같은 일을 하겠다는 마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해결되지 못하는 상실 앞에서 사랑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보여주는 것 같다. 소소한 나방 묘사나 눈과 양초, 물과 튜브 같은 이미지로 계속 책을 만지게 만든다. 그 덕분에 이 감정은 오래 남아 있다. 동아와 인하가 서로의 말 아래 말을 붙이며 마음을 남겼던 것처럼, 이들의 마음이 한편에 오래 남아 있을 것 같다. 겨울이 오거나 바다가 보이면 문득 이 책이 떠오를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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