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을 깊은 혼란에 빠뜨렸던 윤석열의 기습적인 비상계엄 선포 사태를 다룬 시네마틱 다큐멘터리 '란 12.3'이 내달 22일 개봉을 확정했다. 이명세 감독이 연출을 맡은 이 작품은 군사력에 의해 무력화될 뻔한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고자 국회로 자발적으로 모여들었던 시민들의 긴박하고 치열했던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제작진은 사건의 실체를 보다 입체적이고 다각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150여 명의 시민이 직접 제공한 현장 영상부터 50여 곳에 달하는 의원실 및 보좌진의 자료까지 방대한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현장 기자의 밀착 취재 내용과 다양한 유튜버들의 기록물까지 총망라한 전례 없는 수준의 집단 지성적 데이터 수집 과정으로, 후대에 남길 중요한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를 강하게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란 12.3'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첫 글자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국가적 위기 상황을 철저히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창작자의 윤리적 책무를 보여준다. 1차 포스터는 화면 전체를 압도하는 붉은색의 '란' 한자 배경 위로 응원봉의 불빛을 밝힌 채 시위에 나선 시민들이 광장을 가득 메운 모습을 배치했다.
이번 작품이 지닌 가장 큰 특징은 기존 다큐멘터리가 관습적으로 의존해 온 내레이션과 당사자들의 인터뷰를 과감하게 배제했다는 것이다. 이명세 감독은 지난해 12월 3일 방송된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하여 오직 음악의 선율과 리듬만으로 전달해야 했기에 작업 전반에 걸쳐 고뇌가 있었다는 점을 고백한 바 있다.
같은 방송에 출연했던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는 사유와 사고의 기능이 일순간 정지되어 버린 충격적인 계엄의 밤을 시각적 이미지로 탁월하게 포착해 냈으며, 배경 음악이 관객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듯한 강렬한 인상을 준다고 평가했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이미지로 사유한다'는 차원 높은 미학적 성취를 달성한 것이다.
역사의 변곡점마다 거리에 나섰던 '시민'이라는 익명의 거대한 군중 그 자체를 서사의 핵심적인 추동력으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마치 한 편의 스릴러 영화처럼 유기적으로 엮어냄으로써, 관객들을 관찰자의 위치로 끌어올려 2024년 12월 3일 여의도의 한가운데로 진입시키는 이머시브(몰입형) 체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명세 감독은 특정 이념에 치우친 과잉된 감정 이입을 철저히 배제한 채 건조하고 서늘한 시선을 유지하며, 흩어져 있던 현장의 날선 조각들을 하나의 밀도 있는 서사적 흐름으로 정교하게 직조한다. 관객이 분초를 다투며 대치해야 했던 그날 밤의 극심한 긴박감을 마치 극영화의 클라이맥스처럼 생생하게 체감하도록 만들면서, 음악이라는 강력한 비언어적 매개체를 통해 다큐멘터리 특유의 서사적 여백을 감각적으로 채우는 고도의 장르적 전략을 고수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와 '형사 Duelist(2005)' 등의 전작을 통해 새로운 비주얼과 문법으로 한국 영화계에 독보적인 족적을 남긴 이명세 감독 특유의 탐미적인 비주얼리즘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날것의 기록 영상들이 고도로 계산된 시네마틱 연출 과정을 거치면서, 현실 세계의 거친 투박함과 영화 매체의 정제된 세련미 사이에서 발생하는 독창적인 구조를 갖추었다.
'란 12.3'이 지지층의 단단한 결집에 힘입은 흥행 성공을 넘어서서 한국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기념비적이고 도발적인 작품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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