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 웨이 홈' 이후에 혼자가 된 피터 파커(톰 홀랜드)는 이제 모두에게서 지워진 채 뉴욕을 지키고 있다. 경찰과 한 팀처럼 소통한 덕분에 범죄율은 떨어지고, 진짜 친절한 이웃까지 되었지만, 점점 자기 연민에 빠지게 된다. MJ(젠데이아 콜먼)가 새로운 애인과 함께한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면서 감각의 과부하가 걸리고, 타인을 조종하는 정체불명의 빌런까지 등장하면서 위기에 몰린다.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 조종하는 의문의 적은 피터 파커의 상황과 맞물리는 면이 있다. 피터가 상실 때문에 자신을 소모품처럼 사용하는 반면, 그 의문의 적은 타인을 도구처럼 사용하고 있다. 둘 다 힘이 커질수록 자신과 타인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캐릭터 설정은 사실 큰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벤 삼촌의 조언으로 귀결된다. 이번에는 메이 파커(마리사 토메이)의 입을 빌려서 대사를 조금 변형한 면은 있으나 상처를 힘으로 덮으면 안 된다는 식의 조언과 일맥상통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빌런은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 처음에는 스콜피온과 같은 스파이더맨의 천적들을 조종하면서 꽤 좋은 빌런처럼 보였다. 10m 안에서만 타인의 몸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제한한 점도 원작과 달리 게임의 규칙처럼 재해석한 것이다. 10m 안의 타인에게 연쇄적으로 몸을 갈아타고, 그것을 거미줄로 급하게 따라가는 스파이더맨의 모습도 꽤 스릴이 있다.
문제는 그 빌런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관객들이 더는 그를 위험한 존재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홈커밍'이나 '파 프롬 홈'처럼 확실한 악역을 세우지 못하면 액션의 목적이 흐려지게 된다. 빌런에게 조종당하는 자들과 충돌하는 것도 더는 피터 파커의 의지가 아니게 되면 최종 보스가 사라진 느낌이 나 버린다. 홈커밍의 벌처나 파 프롬 홈의 미스테리오는 피터가 맞서야 할 가치관과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꽤 선명한 빌런들이었다.




돌이켜보면 이번 빌런이 선택된 이유는 이해가 간다. 이번 영화는 '노 웨이 홈'에서 있었던 큰 사건을 희생시키지 않았다. MJ와 네드를 하루아침에 피터 파커의 애인과 친구로 만들어 버리면 '노 웨이 홈'의 마지막 선택을 너무 싸게 되돌리는 셈이니 말이다. 사랑할 준비가 되지 않은 MJ는 냉정해 보이지만, 네드와의 사소한 재회부터 시작하는 점이 훨씬 인간적이었다. 잃어버린 삶을 복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시 관계를 만들어가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빌런이 선택된 배경에는 그동안 피터 파커가 배운 가치관을 다시 떠올린다는 의미가 있다.
기대했던 '어벤져스 둠스데이'와의 명확한 연결점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둠스데이에 등장하는 캐릭터도 보이고, 떡밥 같은 것들도 MCU의 의무처럼 느껴지긴 하나, 이번 영화의 잠정적 결론은 MJ와 네드와의 재시작에 있어야 할 것이다. 다시 멀티버스와 같은 떡밥이 결말을 잡아먹었다면, 또 다음 대형 이벤트의 프롤로그 정도로 전락했을 것이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점이 있다. 이번 영화는 데스틴 크리튼 감독이 이미 밝힌 것처럼 인섬니악(Insomniac Games)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액션의 중요한 참고 자료로 사용했다. 뉴욕의 빌딩 사이를 빠르게 스윙하는 모습이나 웹을 이용한 콤보, 웹 폭탄과 같은 가젯 활용, 고무줄처럼 몸을 당기는 슬링샷 등 모두 스파이더맨 게임에서 봤던 연출이었다. 게이머들이 영화를 보고 바로 플레이를 하고 싶을 정도로 꽤 박진감 넘치게 찍었다. 빌딩 사이를 스윙하는 모습이 아슬아슬하면서 스릴이 있고, 웹을 이용한 전투도 액션의 리듬을 한층 끌어올렸다. 결론적으로 이번 신작은 액션과 감성을 모두 잘 잡은 수작이다.
한편 영화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이날 29일 개봉하며 엔딩 크레디트 이후에 쿠키 영상이 1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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