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후기] '산양들' 정답을 모르는 그대들에게 바치는 청춘 동화

꿈이 없어도 길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산양들'이 보여주는 따스한 정서

사진=(주)시네마달 제공
사진=(주)시네마달 제공

고등학교 3학년 인혜(박혜진), 서희(이승연), 정애(박효은), 수민(최수인)은 진로에 대한 고민도 없어서 학교에서 특별관리대상이 되었다. 꿈을 좇지 않는 이 소녀들은 대신 숲으로 가서 텐트를 치고 감자를 쪄 먹으며 학교 사육장에 있던 오리와 토끼, 닭들을 돌본다. 결국 진로를 찾지도 못하고, 사회에 맞서 거창한 선언도 하지 않는 이 학생들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꿈이 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이 학생들은 너무 막막해서 당장 손에 잡히는 일부터 몰두하고 본다. 정이 들었던 오리가 조류독감으로 살처분당할 위기에 몰리자 만사 제쳐두고 무작정 오리를 데리고 학교를 빠져나온다. 주변의 어른들은 당연히 이해하지 못하고 꾸중하지만, 소녀들은 당장 눈앞에서 살릴 수 있는 '생명'에 그저 마음이 갔던 것이다.

소녀들이 요즘 학생 같지 않다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별다른 계산 없이 동물을 살리는 일에 합류하고 있으니까. 무조건 선의로 움직이는 부분도 현실성의 결을 일부러 낮춘 듯하다. 감독의 전작 '라임크라임'처럼 이 영화도 청소년들을 여타 작품들처럼 냉소적으로 그리지 않겠다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요즘 영화나 드라마 속 청소년들은 빨리 영악해지고, 쉽게 감정이 폭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아직 세상을 모르는 청소년들의 순수함과 우직함을 믿어주는 쪽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지나치게 순수하고 예쁘지만, 의도적으로 동화적인 구조도 보여주고 있다. 조류독감이 퍼진 상황에서 무작정 오리를 데리고 도망치는 건 누가 봐도 우려스러운 일이다. 영화는 이런 생물학적 사실보다 소녀들이 해낼 것이라고 믿는 감정을 택했다. '오리를 완벽하게 보호했는가?'라는 이성적인 질문이 아닌, 처음으로 어떤 존재를 위해 함께 움직인 소녀들이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었다는 성취감인 것이다.

"산양들이 갈 곳은 얼마든지 있다"라는 인혜 엄마의 말은 영화 전체를 정리하는 대사처럼 들린다. 이건 사실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진로 고민도 하지 않는다고 타박하는 어른들을 향한 반박인 셈이다. 본래 산양들은 정해진 길보다 험한 곳을 타는 동물이고, 길이 없어 보여도 자기 발로 갈 곳을 만들어 가는 존재니까. 학교는 길을 정해 놓고 답을 요구하지만, 어떤 학생들은 영화 속 소녀들처럼 아직 갈 곳을 모르고 방황할 수밖에 없다.

감독은 전작인 '라임크라임'에서 래퍼가 되기 위한 청소년들의 열정을 보여주었다. 이번 신작에서는 무엇을 열정으로 삼을지 몰라 헤매는 소녀들을 내세우면서 더 현실적인 출발점으로 돌아간 듯하다. 전작처럼 목표도 크지 않고 짜릿한 면도 없지만, 여전히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정서를 만들어내고 있다. '라임크라임'과 '산양들'을 차례대로 감상해 보면, 앞으로 그만의 '청춘 동화'가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산양들'은 자극적이지 않고 흐뭇하게 감상할 수 있는 영화지만, 가벼운 기법으로 보일 수는 없다. 꿈이 없는 학생들을 너무 빨리 실패자로 분류하는 이 사회에 대한 아주 귀엽고 앙증맞은 시위로 보이니까. 이런 영화들이 현실을 지나치게 미화한다고 느낄 수는 있지만, 냉소가 흔한 요즘 시대에 충분히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한편 '산양들'은 오는 29일 개봉 예정이다.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댓글 작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