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멕시코 출신의 무용수 페르난도(아이작 에르난데스)는 미국의 상류층 여성 제니퍼(제시카 차스테인)와 연인 관계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던 그는 제니퍼의 헌신적인 사랑을 받으며 결국 무대 위에 오를 기회가 생기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어긋난다. 미국 재벌 여성과 멕시코 무용수의 사랑으로 보였던 이 영화는 점점 차갑고 건조한 시선으로 변질된다. 사랑도 권력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계급과 권력, 욕망과 죽음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았던 미셸 프랑코 감독이 그런 '자유'를 선호할 리가 없다.
제니퍼와 페르난도는 분명히 서로에게 강하게 끌리고 있었고, 단순히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용만 하는 관계는 아니었다. 문제는 제니퍼가 페르난도의 직업과 체류를 언제든지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페르난도도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제니퍼를 원하고 있다. 이런 권력관계는 결국 사랑을 소유와 통제로 변질시킨다.
그런 면에서 제니퍼는 꽤 흥미로운 캐릭터지만,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현실적이라서 불쾌하기도 하다. 멕시코까지 찾아가서 페르난도를 메이저 공연에 밀어주는 것만 보면 분명 그를 매우 갈망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상한 점은 페르난도가 그런 그녀의 갈망을 쉽게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동안 두 사람 사이에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고, 직시하지 않은 채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고 있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게 된다. 이런 의심은 제니퍼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하겠다는 이기심이 발현될 때 확신하게 된다.
영화가 단서를 많이 주지 않지만, 제니퍼는 자신만의 욕망을 온전히 가질 자유가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설정이 결정적으로 보이기는 하나, 부유한 집안의 딸이자 자선 사업으로 성공한 여성으로서 그녀의 계급 밖에 있는 세계를 동경하는 면도 있었던 것 같다. 무용이라는 뛰어난 재능과 젊은 남성의 육체를 가지고 있는 페르난도는 그런 세계를 대표하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제니퍼에게 그런 밖의 세계에 발을 들일 정도로 용기는 없었다는 것이다.
영화는 제니퍼와 페르난도의 성관계에 유독 에너지를 많이 사용한다. 대사가 들어간 영화의 장면 대부분은 차갑게 절제가 되어 있는 반면, 제니퍼와 페르난도가 서로 원하는 순간에는 유독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이다. 특히 제니퍼의 음담패설에 가까운 상상은 그녀의 욕망이 페르난도라는 한 사람을 향한 이해와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니퍼는 분명히 페르난도를 원하지만, 그가 처한 현실 전체를 감당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제니퍼의 가족이 페르난도의 존재를 알면서도 갈등이 대사로 폭발하지 않는다. 대사의 대부분이 갈등이 일어나기 전에 편집이 되어 버린다. 돌이켜보면 제니퍼의 가족은 돈과 인맥이 충분하기 때문에 큰 소리로 다툴 필요가 없었다. 겉으로는 밝게 웃고 점잖게 행동하지만, 뒤에서는 더 무서운 방식의 폭력을 사용한다. 이런 묘사가 더 서늘한 이유는 마치 그들끼리 쓰는 언어로 보였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재벌의 품격을 지키면서도 본색을 드러낼 때는 잔인할 정도로 냉혹한 태도를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페르난도에게 순결한 피해자의 자격을 주지 않으면서도 제니퍼에게도 면죄부를 허락하지 않는다.
페르난도와 제니퍼가 이루고자 하는 '드림스'는 처음부터 공존할 수 없었다. 페르난도는 수많은 이주민들의 아메리칸드림을 꿈꿨지만, 제니퍼는 자신만의 세계를 잃지 않으면서 금지된 욕망까지 누리는 판타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대사가 많이 절제된 탓에 두 사람의 관계를 거의 마지막까지 확신하지 못하지만, 오히려 그런 불편한 전개가 영화의 의도와 정확히 잘 맞아떨어진다. 차갑고 씁쓸한 현실로 갑자기 굳혀 버리게 하는 결말은 꽤 충격적이면서도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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