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토퍼 놀란은 '오디세이아'를 영웅의 모험담으로 만들 생각이 없었다. 오디세우스를 죄의식에 사로잡혀 점점 피폐해진 인물로 만들었고, 폴리페모스와 키르케 사이의 언어유희와 동화적인 색채를 모두 지워 버렸다. 대신에 이들을 호러에 가까운 존재로 묘사하면서 오디세우스를 끔찍한 포식자들에게서 간신히 빠져나오는 생존자로 축소했다. 이 영화에서 바다는 미지의 세계가 아니라 트로이아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와 죄의식의 공간이었다.
원작의 폴리페모스는 외눈 거인에 사람을 잡아먹는 무서운 존재지만, 동시에 오디세우스의 지략을 빛내주기도 했다. 내 이름이 아무도 아니라는 속임수에는 묘한 쾌감도 있었다. 대신에 영화가 그려낸 것처럼 폴리페모스와 오디세우스 사이의 대화가 없어진다면, 더는 지능의 대결이 아니게 된다. 폴리페모스는 아무 말도 통하지 않는 포식자가 되는 것이고, 오디세우스와 병사들은 그저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폴리페모스 장면은 무서운 괴기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꽤 설득력 있는 각색으로 보인다. 오디세우스의 영웅성을 덜어주는 대신에 병사들이 느끼는 원초적 공포를 최대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새하얀 피부와 뒤틀린 눈, 바위를 여닫는 거대한 손, 사람을 잡아먹고 나른해져서 잠에 빠져드는 그 원시적인 형체. 이건 신화에 나오는 괴물이 아니라 그냥 악몽에 가깝다. 원작처럼 오디세우스와 병사들을 미워하거나 이해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짐승처럼 인간을 잡아먹는 것이다.
키르케 장면은 거의 보디 호러에 가깝다. 원작의 키르케는 위험하면서도 매혹적이었지만, 영화에서는 전쟁의 상흔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 트로이아 전쟁에서 자행된 폭력을 비판하는 심판자가 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키르케가 병사들을 다루는 기괴한 묘사는 설득력이 있다. 억울한 시민들을 마치 고기처럼 다룰 정도로 잔인했으니 말이다. 이제는 병사들이 고깃덩어리가 되어 버리는 낯설고도 끔찍한 경험을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트로이아 함락이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는 점도 이해가 간다. 놀란은 모든 포맷을 아이맥스(IMAX)로 찍었고, 트로이 목마라는 대형 세트도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브래드 피트가 나왔던 '트로이'나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처럼 멋들어지게 찍을 수 있었을 것이다. 분명 이 트로이아 함락 장면은 원작보다 더 크게 확장해서 보여주지만, 승리의 스펙터클로 만들지는 않았다. 트로이 목마를 역사상 가장 천재적인 계략이 아니라 학살을 가능하게 만든 계략으로 묘사하고 싶었던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아에서 벌어진 아비규환을 보면서 큰 죄책감에 시달린다.
오디세우스가 망자들을 만나는 장면은 좀비 영화처럼 느껴졌다. 트로이아 전쟁으로 죽은 자들을 신비로운 영혼으로 보여주지 않고, 땅에서 기어 나와 진흙을 잔뜩 묻힌 채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것이다. 트로이아 전쟁으로 많은 희생들이 있었으니, 죽음을 낭만화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특히 시논과 오래 대화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성숙한 재해석 중 하나로 보인다. 트로이의 목마를 단순히 오디세우스의 업적으로 보지 않으면서, 그가 남긴 계략이 남긴 희생자들을 응시하게 만들었으니까.
영화는 원작의 재미를 많이 포기했다. 오디세우스는 강한 전사이기도 하지만 능숙한 거짓말쟁이다. 아테나의 조력 속에서 장난기를 발동하면서 유쾌한 서사를 만들어냈다. 영화에서는 아테나를 거의 환영처럼 만들면서 신화적인 이야기도 함께 사라지게 만들었다. 영화 전체 분위기와 맞지만, 다소 아쉬운 점은 있다. 감독은 그런 신화적인 세계보다 오디세우스의 내면을 깊게 파고드는 쪽을 선택했다.
남성이 왕이 되는 세계를 싫어하는 페넬로페의 태도도 중요해 보인다.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남성들의 전쟁과 권력이 만들어 놓은 폭력적 질서 속에서 압박을 받아 왔다. 남편을 끝까지 기다리는 여인으로 기억됐지만, 영화에서는 오디세우스의 귀환 이후에도 그녀가 살아가는 세계는 여전히 깨끗하지 않을 것 같다. 그 덕분에 희생된 병사들을 기리고자 하는 오디세우스의 태도와 맞물리며 감동을 주는 것이다.
영웅의 거창한 모험담을 기대한 관객들은 다소 건조하게 느껴질 수 있다. 대신에 한 인간의 고뇌와 죄책감을 아이맥스의 스케일 안에서 제대로 구현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원작의 신화적인 재미를 모두 걷어내고도 오디세우스의 고독과 압박감을 체험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성취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영화 '오디세이'는 내달 5일 개봉이며 쿠키 영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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