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폐허' 손발이 곤두서는 폐쇄 공간 호러의 끝판왕

스콧 스미스가 작정하고 설계한 끝없는 절망의 굴레

사진=김영사 홈페이지
사진=김영사 홈페이지

무더위를 잊을 정도로 소름이 끼치는 공포 소설을 찾는다면 당연코 스콧 스미스의 '폐허'가 있을 것이다. 스콧 스미스는 전작인 '심플 플랜'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의심하고 합리화하여 망가지는지를 섬세한 필력으로 보여줬다. 작가의 그 능력이 공포 장르로 옮겨 확장한 작품이 바로 '폐허'다.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끼치는 '덩굴'은 공포물의 소재로서 상당히 영리한 선택이다. 마야인들이 지키는 이 기괴한 유적지에 있는 덩굴은 인간의 몸속에 조용히 들어오고, 목소리를 흉내 내며 결국 인간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판단을 흐리게 한다. 잠을 잔 사이에 몸속으로 조용히 파고든다는 건, 우리가 흔히 아는 고어물보다 훨씬 원초적인 공포를 자아낸다. 캐릭터들은 이제 자는 동안에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독자들도 서서히 책을 읽는 동안에 손과 다리를 의식하게 만든다. 책을 덮어도 불쾌한 기분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덩굴이 오랫동안 유기물을 먹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유적지 주변에 새와 곤충이 안 보인다는 점, 마야인들이 소금을 뿌려 확산을 막는 듯한 태도,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더 많은 피해자들을 유인하는 것까지, 인간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것이다. 숭배자들처럼 보였던 마야인들이 실은 재앙을 막기 위한 행동을 했다는 점에서 또 한 번 소름이 끼친다. 아마 이들은 그 재앙을 막기 위해 끔찍한 선택을 반복했을 것이다. 영화에서도 나온 것처럼 어린아이까지 희생시켰으니 말이다.

사실 이 소설의 가장 무서운 지점은 인간성이 붕괴되는 과정에 있다. 물과 음식이 떨어지고, 누군가 다쳐서 감염이 되기 때문에 사랑이나 우정이 점점 사치가 된다. '심플 플랜'이 돈 가방 하나로 인간관계가 무너졌다면, '폐허'는 극도의 생존 본능으로 무너지는 것이다. 소설이 영화보다 더 지독하게 묘사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읽다 보면 독자 스스로도 머리가 이상해지는 기분이 들 정도다.

가장 결정적인 공포의 순간에서는 캐릭터들의 희망과 죄책감을 동시에 건드리는 훌륭한 장치였다. 이 설정을 통해 유적지가 얼마나 오랫동안 존재하고 악질적인 짓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인간들을 오랫동안 잡아먹으면서 그들의 심리를 흔들 정도로 지능을 터득했을 수도 있겠다.

스콧 스미스는 작정하고 이 소설을 쓴 것 같다. 마지막 남은 희망까지 앗아가 버리는 결말은 최악의 절망으로 다가온다. 누군가의 희생이 무의미해지면서 다음 피해자들까지 계속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버린다는 건, 이 공포가 절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가 어느 정도 희망이 보이는 장면을 따로 찍었다는 건, 그만큼 소설이 끔찍할 정도로 차갑고 무섭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의 진짜 공포는 사람의 신체, 언어, 관계까지 무너뜨리는 설정에 있다. 솔직히 영화는 시각적으로 큰 충격이라서 차라리 텍스트를 소비하는 것이 나을 정도다. 그런데도 소설은 스콧 스미스의 탁월한 묘사로 인해 심리적 압박감과 공포의 충격이 더 크다고 할 것이다. 비위가 약한 독자에게는 권하기 어렵지만, 폐쇄 공간 공포와 심리가 붕괴되는 호러물을 좋아하는 마니아에게는 강렬한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계속되는 무더위 속에서 정말 머리가 쭈뼛 설 정도로 소름이 끼치는 소설을 읽고 싶다면 '폐허'를 추천한다.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댓글 작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