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8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BIAF2026)이 국제경쟁 단편 부문 35편의 라인업을 공개했다. 올해 경쟁작들은 칸, 베니스, 베를린을 비롯해 선댄스, 안시, 로카르노 등 세계 주요 영화제에서 먼저 공개된 작품들로, 국내에서는 모두 한국 프리미어로 상영된다. 해외 상영제에서 수상하거나 평단의 호평을 받은 작품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는 점이 기대감을 높인다. 국내 관객들이 국제 애니메이션계의 최신 흐름을 한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씨네진은 특별히 이번에 라인업에 포함된 주요 상영작들을 정리했다.
선댄스 심사위원대상 수상 '공상가의 일상'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작품 가운데 하나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스토리 아티스트 스티븐 P. 니어리 감독의 '공상가의 일상(Living with a Visionary)'이다. 이 작품은 50년간 결혼생활을 이어온 존이 파킨슨병을 앓는 아내의 환각을 마주하며, 사랑의 의미를 다시 경험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 작품은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단편영화 심사위원상 애니메이션 부문을 수상했다. 선댄스 심사위원단은 작품의 시각적 표현이 재미있고 상상력이 풍부하면서도 궁극적으로 가슴 아픈 이야기를 아름답게 구현했다고 평가했다. 어린아이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섬세한 그림체와 무거운 이야기 속에 유머와 생기를 더한다고 설명했다. 선댄스는 존 매티어스의 회고록에서 출발한 "조용하지만 치명적으로 슬픈" 애니메이션으로 소개했다. 부드러운 색감의 손그림과 환각을 시각화한 이미지가 사랑과 노화, 상실을 다룬 이야기와 결합됐다는 평가다.
이름 지을 수 없는 공포 '메타피어'
'메타피어(Metafear)'는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베테랑 모리타 슈헤이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다. 모리타 감독은 '도쿄 구울' 시리즈를 연출한 것으로 잘 알려졌으며, 단편 'Possessions'로 아카데미 애니메이션 단편 부문 후보에 오른 바 있다. 이 작품은 악몽에 시달리는 소녀가 자신의 공포를 잊지 않기 위해 꿈을 기록하고 이름을 붙이는 데서 출발한다.
어느 날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악몽이 괴물로 변하고,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도시가 혼란에 빠진다. 반다이남코 필름웍스의 '미래로의 항로' 프로젝트를 통해 제작된 3DCG 단편으로, YAMATOWORKS가 제작하고 '린다 큐브' 등으로 알려진 다나카 타츠유키가 캐릭터·비주얼 디자인을 맡았다.

잠을 방해하는 윗집의 소음이 악몽으로 변한다 '위층 이웃들에게'
코니 허 감독의 '위층 이웃들에게(Dear Upstairs Neighbors)'는 올해 BIAF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픽사의 '인사이드 아웃 2'에 참여했던 코니 허 감독이 연출한 6분짜리 단편으로, 잠을 자고 싶은 한 여성이 윗집에서 들려오는 끊임없는 소음 때문에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지는 과정을 그린다.
코니 허 감독은 구글 딥마인드 연구진과 협업해 손으로 제작한 그림과 음악을 바탕으로 비디오 생성 기술을 활용했다. 이로써 단순한 AI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회화에 가까운 방식으로 발전시켰다.
해외 평단의 반응도 상당히 긍정적이다. Filmotomy는 작품의 화려하고 예술적인 영상미, 밝고 동화적인 캐릭터 디자인, 불면과 소음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대비시킨 점을 높이 평가했다. 특히 대사 없이 영상과 사운드만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점, 꿈과 현실을 흐릿하게 섞어가는 연출을 강점으로 꼽았다. Den of Cinema는 6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윗집 소음이라는 단순한 소재를 주인공의 악몽과 상상으로 확장한 점을 높게 평가했다. AI 활용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는 상황에 나온 작품이라 더 기대감이 높다.

'사바' 중력이 뒤집힌 세계…할아버지와 손자의 가장 아름다운 이별
드림웍스의 '드래곤 길들이기', '쿵푸팬더 2' 등에 참여한 리론 토파즈 감독의 '사바(Saba)'는 올해 BIAF의 대표적인 감성 단편으로 꼽힌다. 영화는 중력이 거꾸로 작용하는 추상적인 세계에서 할아버지와 손자가 배를 타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폭풍이 닥치면서 두 사람의 삶을 연결하던 밧줄 하나가 끊어지면서 가족과 상실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한다.
트라이베카영화제에서는 짧은 러닝타임 안에 할아버지와 손자의 관계를 설득력 있게 만들어내는 능력을 강점으로 꼽았다. 중력을 뒤집은 설정으로 인해 비가 위로 쏟아지는 장면 등이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 관객은 뒤집힌 중력이 삶과 이별, 애도의 감정으로 이어진다며 의미심장한 평가를 내렸다.
'퍼스트 헤어컷!' 픽사 애니메이터의 경험담을 담은 슬랩스틱 코미디
이보 코스 감독의 '퍼스트 헤어컷!(First Haircut!'은 6분 분량의 독립 애니메이션이다. 첫 미용실 방문을 앞둔 불안한 강아지가 미용사의 손길을 피하려고 벌이는 소동을 클래식 카툰의 슬랩스틱 코미디 형식으로 풀어냈다. 픽사의 '소울'과 '엘리오' 등에 참여했던 이보 코스의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제작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이 작품은 올해 열린 로드아일랜드국제영화제(RIIFF)에서 최우수 어린이 애니메이션 부문 1위(First Prize)를 수상했다.
'아키라'의 작화 감독이 만든 29분의 판타지 '태양의 장미와 달의 라피스'
나카무라 타카시 감독의 '태양의 장미와 달의 라피스(SUN'S ROSE, MOON'S LAPIS)'는 이번 라인업에서 비주얼 측면에서 기대작이다. '아키라'의 총 작화 감독으로 유명한 나카무라 타카시가 연출했기 때문이다. 부상당한 병사가 기묘한 세계로 들어가 라피스를 만나고, 그녀의 인도로 성의 탑에 있는 로즈 공주를 깨우려는 이야기다.
안시 수상작 '플리즈', 사랑받고 싶은 인간의 우스꽝스러운 욕망
안나 만차리스 감독의 '플리즈(Please)' 역시 이미 해외에서 검증된 작품이다. 스톱모션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사랑과 친밀감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여러 에피소드를 엮어 인간의 외로움과 애정 욕구를 어둡고 우스꽝스러운 방식으로 바라본다. 스텔란 스카스가드 등이 목소리 연기에 참여했다.
이 작품은 올해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장뤼크 시베라스 첫 작품상(Jean-Luc Xiberras Award for a First Film)을 수상했고, 자그레브 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는 관객상을 받았다. Cineuropa는 사랑을 갈망하는 인간을 다룬 부조리 코미디로 평가하면서 로이 안데르손을 연상시키는 정교한 화면 구성과 절제된 색감, 스톱모션 인형의 기묘한 비율을 특징으로 꼽았다.
'버텨내기' 이방인의 외로움을 녹여낸 애니메이션
판 시소코 감독의 '버텨내기(Hold It Together)'는 한 이민자가 낯선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을 다룬다. 주인공 네마는 아이슬란드의 수영장을 찾아가지만,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몸이 녹아내리는 듯한 이미지로 심리적 상태를 표현한다. 안시영화제에서 프랑스 단편상(André Martin Award for a French Short Film)을 수상했다.
애니메이션 전문 매체 The Animation Belgian은 "젊은 여성과 이민자의 문제, 낯선 나라에서 고독에 대처하는 방법"을 다룬 아름다운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평가했다. 또한 멜버른국제영화제는 이방성과 소속감의 문제를 다룬 섬세한 이야기로 소개했다.
'카툰 피직스' 미국식 카툰과 스톱모션의 결합
'카툰 피직스(Cartoon Physics)'는 지난 2018년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상 후보에 올랐던 루 쿠와하타와 맥스 포터 감독의 신작이다. 네 살짜리 아이가 정원에서 죽은 새를 발견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로, 엄마는 아이에게 죽음이라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를 고민한다.
안시영화제 공식 경쟁작으로 선정됐으며, 전문 매체 Format Court는 스톱모션과 미국식 카툰의 물리법칙을 결합한 방식에 주목했다.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독특한 전개를 어린 시절의 무구함을 상징하는 장치로 활용했다고 평가했다. 과장된 효과음과 리듬감 있는 음악을 장점으로 평가했다.

칸·베니스·베를린 작품들도 포진
이 밖에도 국제경쟁에는 칸영화제 단편 경쟁작 '라스트 스프링'과 '시스터스 스윔', 감독주간의 '고(故) 대령의 딸들'과 '에리', 칸 라 시네프의 한국 애니메이션 '새의 랩소디'가 포함됐다. 베니스 단편 경쟁에서는 '가위바위보'와 '머나먼 푸른빛', 베를린에서는 '우주비행사들', '이니 미니 마이니 모!', '진지한 생각' 등이 선정됐다.
최원정 감독의 〈새의 랩소디〉는 칸 라 시네프에 선정된 작품으로, 성공과 인정의 상징인 '새'를 좇는 군중의 모습을 통해 욕망과 자유를 이야기한다. 칸영화제는 "욕망을 좇다 추락하는 이들을 위한 랩소디"라고 소개했다. 야노 호나미 감독의 '에리'는 송아지를 낳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젖소들의 세계에서 홀스타인 소 '에리'가 다른 젖소를 사랑하게 된다는 설정을 통해 사랑과 욕망을 다룬다. 한국 작품 '퇴마록'의 슈퍼바이저이자 봉준호 감독 '앨리'에 리드 애니메이터로 참여하고 있는 백나현·백다현 공동 감독의 '엠티'도 볼 수 있다.
올해 개최되는 제28회 BIAF는 이미 해외 영화제에서 검증받은 작품들을 대거 포진하면서 벌써부터 애니메이션 팬들의 기대감을 끌어올리고 있다. 제28회 BIAF는 오는 10월 23일부터 27일까지 열린다.

댓글 (0)
댓글 작성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