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셔터(2004)'의 시작은 연인 턴과 제인의 뺑소니 사고다. 한 여성을 차로 치고 도망쳐 버린 이 두 사람은 죄책감에 사로잡힐 틈도 없이 심령사진들로 인해 공포를 느끼기 시작한다. 영화는 얼마 가지 않아 더 깊고 구조적인 범죄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뺑소니는 시작일 뿐이었으며, 진짜 공포는 툰이 과거에 저지른 일로 인한 저주였다.
이 영화에서 카메라와 사진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영화가 공개될 당시에 우리도 심령사진이나 괴담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한국 정서와도 잘 맞아떨어졌다. 카메라 속 귀신은 스치듯 프레임에 걸리면서 보여주고 효과음도 강조하지 않는다. 관객까지 순간적으로 자기 눈을 의심하게 하는 연출로, 당시 심령사진의 공포를 제대로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부분의 팬들은 마지막 결말을 기억하겠지만, 현상실로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귀신 장면도 아이디어가 꽤 좋았던 것 같다. 갑자기 윽박지르는 점프 스케어가 아닌, 일상적인 동작 속으로 자연스럽게 귀신을 스며들게 만들었다. 전화를 통해 뒤늦게 귀신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턴의 공포에 공감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무엇인가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보다, 이미 곁에 무엇인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더 무서운 법이니까.
결말은 지금도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 턴의 이상행동으로 단서를 쌓아 놓은 덕분에 반전이 억지스럽게 보이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그 불길한 분위기가 마지막에 가서야 의미를 얻는다는 점이 좋았다. 좋은 공포영화는 반전 있는 결말로 더 무섭기 마련인데, '셔터'가 정확히 그런 작품이었다.
2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SIWFF)에서는 영화인과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가 스페셜 큐레이터로 참여해 관객과 함께 보고 싶은 영화를 선정하는 섹션 'RE:Discover 큐레이션'에서 '셔터'를 택했다. 스페셜 큐레이터 정보라 작가는 이 영화에 대해 "성 착취라는 말이 자리 잡기 전부터 존재했던 아날로그 방식의 성 착취를 다룬 공포영화"이며 "사건의 실체를 서서히 드러내는 매혹적 구성, 가해자를 손쉽게 단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형벌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가게 하는 인상적 결말"이라고 평가했다.
지금의 디지털 성범죄는 촬영에 그치지 않고 온라인으로 유포하고 AI로 인한 합성 이미지까지 자행되고 있다. '셔터'는 그 이전에도 아날로그 사진이 여성을 쉽게 지배하고 협박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금 시대에는 낯설지만, 필름을 현상하면서 진실이 떠오르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다. 그때도 사진은 폭력을 기록할 수 있는 증거이면서도 동시에 폭력에 가담하는 장치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돌이켜보면 제인의 역할도 꽤 중요했다. 워낙 강렬한 공포물이라서 툰의 행보만 기억하겠지만, 제인은 사진 속의 메시지를 읽고, 진실을 추적하는 캐릭터였다. 덕분에 귀신이 단순히 사람을 해치려는 존재가 아니라 감춰진 폭력의 기록이 되어 돌아오게 된다. 지금으로 보면 흔한 소재로 보이지만, 정보라 작가가 말한 '아날로그 방식의 성 착취'의 시선으로 보자면 더 깊은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톤 조절이 탁월했다. 음악과 연출이 대체로 과장되지 않고 침착하게 흘러가기 때문에 귀신의 존재가 더 무섭게 다가온다. 휴지가 없던 화장실과 마지막 사진관 장면에서 보여주는 소소한 코미디도 좋은 선택이었다.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코미디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 장면으로, 이후 '피막(2013)'라는 작품을 통해 확인된다.
한편 영화 '셔터'는 내달 20일 열리는 2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SIWFF)에서 섹션 'RE:Discover 큐레이션'을 통해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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