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루먼의 사랑'의 김덕중 감독은 철학적이면서도 영화에 대한 해석까지 명확했다. '트루먼'의 언어적인 의미와 '라이어'와의 대비까지 들어보니, 이것이 영화의 꽤 중요한 구조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현식, 지연, 문성을 각각 '사랑의 시작', '삼각관계', '사랑 후에'로 나눠서 설계했다는 점도 영화 속 연결고리가 생각보다 촘촘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예상대로 따뜻한 감성도 느껴졌다. 트루먼이라고 믿었던, 어쩌면 트루먼이고 싶었던 현식과 그와 함께 사라진 지연의 행보만 보더라도 영화의 결이 어떤지 알 수 있었다. "저는 딱 한 사람과의 독점적인 사랑의 관계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서로 느슨하게 아껴주는 마음속에 놓여있더라도 버텨낼 수 있는 것 같아요"라는 말이 영화 전체를 다시 보게 만드는 답이었다.
아래는 김덕중 감독님과의 일문일답.
- 지연, 현식, 문성은 '트루먼 쇼'에 나왔던 트루먼처럼 미디어에 의해 소비된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 보였습니다. '트루먼'이라는 이름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며, 영화 '트루먼 쇼'을 차용한 출발점과 그 의미는 무엇이었나요?
"'트루먼의 사랑'의 세계관은 '트루먼 쇼'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트루먼 쇼에서 주인공 외의 인물들은 모두 연기자이며, 이들이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은 모두 약속된 임무를 의식 아래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트루먼의 사랑'에는 '에러'라고 하는 묘한 지점이 있습니다. 에러는 극 중에서 물리적 시간이 멈춘 게 아니지만, '에러'에 걸리는 사람들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는 반복과 멈춘 현상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소프트웨어의 버그처럼요. '트루먼의 사랑'의 세계관은 오히려 '트루먼 쇼'보다는 소프트웨어적인 것에 가까우니, 영화 '프리가이'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프리가이에서는 게임 속 NPC들이 본인이 NPC 라는 것을 알아버렸을 때 벌어지는 소동을 다루고 있거든요.
'트루먼의 사랑'에서 이러한 이상 현상 속에 놓인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이유는 우리가 우리를 포함한 공동체에 속하지 못하고 혼자만 소외되고 있다고 여기는 현실, 우리 자신의 모습을 더 극화해서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에러'라는 현상이 소프트웨어적인 것에 가깝긴 해도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타인들이 정말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멈춘 건지, 의식하지 못한 척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상한 세계 속 나 혼자만 있다라고 느껴질 때, 그럴 때 '우리는 살아갈 힘을 도대체 어디에서 얻어야 할까?' 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한 주인공들의 여정. '그 답안에 각자가 마주치는 다른 관계가 있고 사랑이 있다' 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설정이 '트루먼 쇼'와 다르긴 하지만 굳이 '트루먼'이라는 용어를 쓴 이유는 트루먼이 진실한 사람, 거짓말하는 사람 '라이어'라는 대조점을 이끌어 내는 게 영화의 주제와 연관 지어서 생각하기 더 좋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에러'라는 것이 소프트웨어적 버그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극 중에 있는 주인공들이 '나는 트루먼이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은 다들 날 속이는 라이어들이야'라고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 지연, 현식, 문성이 자신을 각각 '트루먼'이라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세 인물이 공유하는 감정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영화는 현식, 지연, 문성. 이렇게 순차적으로 주인공을 바꿔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 구간별로 내미는 화두도 미묘하게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주인공 현식의 이야기는 [사랑의 시작]입니다. 마치 기적과도 같은 그 순간에 진입하기 위해 현식은 자신의 일상을 모두 내던집니다. 그에게 트루먼이라 함은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과 자기 자신을 다 내던질 수 있는 새로운 변화입니다. 현식은 사실, 이 변화의 순간을 무척 기다렸을 권태로운 일상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설령 그가 진짜 '트루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피그말리온 효과처럼 그 자신은 트루먼이라고 믿을 수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두 번째 주인공 지연의 이야기는 [삼각관계] 속에 얽혀있습니다. 지연은 거짓 세계 밖으로 나갈 동반자만 있으면 누구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녀가 그렇게 찾던 최적의 동반자 문성을 찾았음에도 지연의 마음은 일렁입니다. 사랑은 어쩌면 타이밍일까요? 지연은 드디어 구원받은 자신을 내던져, 자신도 누군가를 구원해 줄 수 있다는 것에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래서 지연의 최후의 선택은 그녀가 그토록 찾던 트루먼이 아닌 현식입니다. '삶은 딱 한 사람만 있으면 돼.'라는 말이 흔들리는 순간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어찌 보면 욕심이고 어찌보면 아이러니이기도 한 것이 삶에 있을 동반자 딱 한 사람을 그토록 애타게 찾다가도 결국 또 변해버리기도 한다.'라는 지점을 그려냅니다.
세 번째 주인공 문성의 이야기는 [사랑 후에]입니다. 문성은 사랑이 지나고 나서야 그 사랑이, 그 관계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체감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때 왜 자신은 '사랑 앞에 모든 것을 내던지지 못했는가'를 자책합니다. 그렇게 방황하는 문성 앞에 새로운 인물 희선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희선은 문성에게 선택지를 줍니다. 동떨어진 트루먼으로 살지, 트루먼이라 할지라도 라이어처럼 살아갈지를요. 그 선택지 앞에 놓인 문성에서 영화는 끝맺음합니다."




- 세 사람의 갈등이 삼각관계처럼 읽히는데, 이를 통해 전달하고 싶으셨던 의미는 무엇이었나요?
"'사랑의 시작', '삼각관계', '사랑 후에…'란 챕터를 그려내기 위해 삼각관계가 필요했습니다. 사랑 이야기에 반드시 필요한 장애물을 삼각관계로 두고, 얽혀내는 이야기가 이 영화의 주제를 보여주는 데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영화 '트루먼 쇼'처럼 세상 밖으로 탈출하겠다는 시도는 누구나 공감할 것 같습니다. 감독님께서는 '뉴질랜드'가 어떤 것을 상징한다고 생각하시나요?
"해외 어딘가 가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미지의 곳. 너무 엉뚱하지도, 너무 친숙하지도 않은 곳을 고민하다가 나온 것이 뉴질랜드입니다. 뉴질랜드 자체의 속성에 어떤 필연성이 있다기보다는 앞서서 필요로 했던 조건들 중 뉴질랜드를 정해보았습니다. 정하고 나서 보니, 뉴질랜드가 누구나 가보고 싶어 하는 곳에 속하기도 하고, 거의 남반구 끄트머리에 있는 곳이기에 세계의 끝이라고 하기에 더 적합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좀 모호하달까요? 세계의 끝이라는데 너무 집중해서 아르헨티나 최남단 이런 데로 정해버리면, 선택의 이유가 너무 명확하게 보이기도 하고, 너무 멀기 때문에 극 중 인물들이 또 쉽사리 가겠다고 마음먹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 희선이 마지막에 말하는 대사가 영화의 핵심인 것 같습니다. 세상이 고장 났다고 느낄 때, 자신도 고장 난 것처럼 생활하며 버틴다는 대사가 다소 회의적으로도 들리는데요. 감독님께서 생각하시는 '버텨내는 삶'이란 어떤 모습인가요?
"희선이 처한 상황 때문에 다소 냉소적으로 이야기하긴 하지만, '트루먼이 라이어인 척 고장 난 것처럼 버텨낸다'라는 것을 저 자신은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문성의 경우에 더 이상 지연을 쫓지 않고 희선을 선택하면 앞으로 그런 삶을 사는 것이겠죠. 그가 함께 시간을 보냈던 토론 모임 멤버들과 우정을 유지하면서요. 이것은 문성이 뭔가를 포기했다기보다는 지연이 아닌 다른 사람과의 사랑과 우정을 통해 그가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보고 싶습니다. 무신론과 불가지론을 엄격하게 유지한다고 했을 때 삶은 참 덧없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착하게 바르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을 정도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성으로 아는 것 외에 우리를 아주 쫀쫀하게 붙잡는 것들이 나와 타인과의 관계망인 것 같습니다. 지연은 그 관계망이 부서져 버렸기에 독점적인 관계를 만들어줄 딱 한 사람을 그토록 찾았던 것이겠죠.
저는 딱 한 사람과의 독점적인 사랑의 관계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 관계가 있으면 좋은 것이지만, 우리가 서로 느슨하게 아껴주는 마음속에 놓여있더라도 버텨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엔딩 씬에서 방치된 아이를 꼭 안아주지 않더라도 다른 주변 사람들이 그 아이를 아껴주었던 것처럼요."

- 결국 중요한 단어는 '사랑'인 것 같습니다. 영화 속 인물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싶어 하면서도 때로는 상처를 주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꾸려 하기도 하는데요. 감독님께서 생각하신 이 영화의 제목 '트루먼의 사랑'은 어떤 의미인가요?
"'트루먼이란 정체성은 우리 시대 소외된 인물이 자기 자신을 그렇게 간주하고 있지는 않은가?'라는데 착안한 설정입니다. 그러한 트루먼들이 각자의 사랑 앞에서 자기 자신을 다 내던지기도 하고, 사람의 아이러니를 드러내기도 하고, 독점적인 사랑 후에 남은 것들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제목을 바꿔보자면 '우리 시대의 사랑들'이라는 게 조금 더 와닿는 제목일 수도 있겠습니다. 트루먼이라는 용어 선택이 너무 강렬해서 관객분들이 '트루먼쇼'와 비교하여 생각하느라 조금 어려워하시기도 하시더라고요."
한편 영화 '트루먼의 사랑'은 오는 26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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