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진 인터뷰] 삶의 무게를 버텨내는 그대들을 위하여…영화 '수련' 이찬호 감독이 전하는 고요한 응원

타인의 상처를 함부로 소비하지 않는 시선…그 세심한 연출의 비하인드

사진=세컨드윈드픽쳐스 제공
사진=세컨드윈드픽쳐스 제공

영화 '수련'은 무려 25개 국가에서 개최된 영화제에 초청된 작품이다. 초청한 영화제만 65곳이다. 미국에서 개최된 제2회 선스크린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을 수상하였고, 제19회 레드락 영화제에서는 심사위원 대상 최우수 작품상, 장편 극영화 부문 특별 공로 연기상 등을 수상했다. 그 밖에 인도, 이탈리아, 뉴질랜드, 그리스, 우루과이, 콜롬비아 등에서 다수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영화는 배우를 꿈꾸는 효원(이홍연)과 고등학교를 중퇴한 은서(최은서)가 함께 가출하며 시작된다. 효원은 오디션을 보던 중에 여배우 수연(이승연)의 눈에 들어오면서 극단에 입단하고, 그녀의 집에 기거하게 된다. 효원을 유일한 버팀목으로 여기던 은서는 점점 불안해지고, 두 사람과 가깝게 지내던 인철(박인철) 사이에서도 불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이찬호 감독님과 인터뷰를 하면서 영화가 참 세심하다는 느낌이 다시 한번 들었다. 예상대로 타인의 상처를 함부로 소비하지 않으면서도, 작은 배려 속에서 '회복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이 있었다. 형광등을 고치거나 도시락을 문고리에 걸어두는 이런 작은 행동들을 사랑과 우정의 증거로 보는 시선이 참 인상적이다. 영화가 말하는 것처럼 '회복력'은 완전히 치유되는 것보다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태도에 있다고 보인다.

아래는 이찬호 감독님과 일문일답.

※ 이 기사에는 영화 '수련'의 주요 전개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영화를 보면 감독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인간관계의 균열과 그런 아픔 속에서도 '회복력'이 중요하게 보입니다. 그렇다면 가출한 두 소녀와 배역을 잃어가는 여배우를 주인공으로 설정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맞습니다. 제 영화에서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테마가 회복력입니다. 저는 그 회복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인철과 은서 할아버지, 영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소소한 배려심과 견뎌냄이 어떤 회복력의 근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자신의 안식처나 삶의 무대에서 밀려나 삶의 경계에 서 있는 인물들에게 관심이 갑니다. 가출한 소녀인 은서와 사회 초년생 효원은 아직 서울의 삶에 정착하지 못한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수연은 사회적 지위도 탄탄한 편이고 고급 아파트에서 살지만, 실상 텅 빈 공허함 속에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하고 외로이 살고 있습니다. 물론 주연으로서의 배역들에서 점점 밀려나는 것도 그녀에게 커다란 두려움이었을 것입니다. 이 셋 모두 그 ‘위태로움’에 있어서는 평등합니다. 이 세 명이 만났을 때,,, 가장 연약한 순간에 만난 이들은 가장 솔직하고 연약한 결핍을 드러낼 거라 생각했습니다. 보통의 상황에서 만난 고통보다도 훨씬 더 그 고통의 파급력이 강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은서와 효원도 서로, 수연과 효원도 서로, 초반의 행복했던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고통은 배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기의 삶을 파멸로 이끌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자기 생을 유지했던 것 또한 일종의 회복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미약하고, 아직은 미성숙하고, 계속해서 흔들리고 위태로울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유지할 것입니다. 자신을 잃지 않을 정도의 회복력은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효원과 수연이 완전하게 연대하지 못하고 그들의 관계는 끝이 나버렸습니다. 처음에는 서로에게 거울과 같은 존재였지만, 결국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가해자와 구원자로서의 경계선에서 외줄 다리를 타다가 서로의 손을 놓고 말았습니다. 때문에 온전한 회복력이라고 할 수는 없는, 아주 최소한의 회복력만을 보여줬습니다. 그것이 안타까운 지점이지만... 저는 함부로, 그리고 쉽사리, 이들에게 구원의 서사를 제공할 수는 없었습니다. 영화 수련의 인물들은 자신의 회복력을 간직한 채, 자신의 삶을 유지하지만... 그들은 그 검은 물밑에서 언제까지일지 모를, 어쩌면 벗어 날수 없을 지도 모르는... 무겁디무거운 삶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야 될지도 모르니까요."

사진=세컨드윈드픽쳐스 제공
사진=세컨드윈드픽쳐스 제공

- 캐릭터들의 결핍으로 인한 고통이 서로에게 전이되는 과정이 씁쓸했습니다. 이야기를 구상할 때부터 이런 구조를 생각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밖에 없어서... 수많은 인간관계망 속에서 살아갑니다. 서로는 서로에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주고받고 살아갑니다. 왜 이런 말이 있죠... '부모가 행복하여 자식이 행복하다.', '자식에 대한 가장 훌륭한 교육은 부모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말속에 담긴 평범한 진실은 인간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속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영화 수련은 인물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의 고통을 전이시키면서, 각각의 연쇄반응을 일으킵니다. 여기서 제가 가장 주목했던 것은 그 과정 속에서 권력의 이기심이 개입한다면 도대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하는 질문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고통의 한없는 증폭이었습니다. 저는 그러한 모습들을 사실적이고 일상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관객분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내가 효원이라면 내가 은서라면, 그리고 내가 인철이라면,.. 그리고 내가 수연이라면, 나라면 과연 어떻게 행동했을까.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지금. 내 주변에 나도 모르게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상대에게 고통을 전달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일종의 권력자로서 좀 더 성숙하게 행동할 수 있었는데, 내가 아프다는 이유로, 내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고 살지는 않는가. 하는 질문들입니다. 관객 여러분들이 그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 번씩만이라도 해 볼 수 있다면... 저는 연출가로서 제가 딱 의도했던 만큼만, 적어도 제 작은 그릇만큼이라도... 최대치의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닐까 합니다. 적어도 자신도 모르게 타인에게 자기 고통을 전가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 인생은 그다지 나쁘지 않은 삶일 것입니다. 그런 지점들을 관객분들이 정면으로 목도할 수 있도록 영화 수련을 만듦에 있어서 제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해왔던 것 같습니다."

- 여배우 수연은 '갈매기'의 아르까지나와 비슷해 보이는데요. 효원에게 연기를 가르치고 기회를 주면서도 결국 그녀를 질투하는 모습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으셨나요?

"영화 수련에는 절대적인 악인이나 절대적인 선인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배우 수연은 그저 조금은 연약한 존재일 뿐이지요. 수연은 처음에는 선의를 가지고 효원에게 기회를 주고 연기를 가르치고 극단으로 불러들입니다. 그러다 수연이 공황발작으로 쓰러졌을 때, 효원은 기꺼이 같이 옆에 누워서 그녀를 안정시키려고 합니다. 또한 수연도 효원이 연기학원에서 자해의 연기를 하다 정신적인 고통을 느낄 때, 효원을 꼬옥 안아 줍니다. 그녀들은 서로에게 위안을 주는 관계로 나아간 것입니다.

하지만 효원이 날것의 생생함과 젊음을 보여주고 효원이 연출가의 관심은 받기 시작하면서, 수연은 자신이 잃어버린 젊음 때문에 배역을 빼앗겼다고 느끼던 그 씁쓸한 순간에 더욱더 효원에게서 위기감을 느낍니다. 저는 수연과 효원이 둘 다 서로에게 자신이 못 가진 것들을 선망하고 동경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둘 다 서로에게 거울 같은 존재로 자리하지요. 수연은 효원에게 젊음과 생생함, 그리고 또 어떤 창의력을 선망하고, 효원은 수연의 예술가적 성취 그리고 안정된 삶을 동경하고 부러워합니다. 그러다 효원의 영향으로 움직인 은서가 자신의 힐링 클래스에 칼을 들고 오면서 위기감은 증폭됩니다. 또한 효원이 니나의 의상을 망쳤다고 오해하는 순간, 수연의 연약함은 극에 달합니다. 그래서 수연은 효원을 내치게 된 것입니다.

수연은 단순히 선의만을, 혹은 악의만을 가진 단선적인 캐릭터가 아닙니다. 자신의 자리가 위협받을 때 올라오는 본능적인 열등감은 수연의 연약함을 증폭시킵니다. 자기의 존재 증명을 끝없이 욕망하며, 본능적으로 자신을 지키려는 방어기제가 쏟아져 나온 것이지요. 그러한 수연의 모습을 통해 우리 모두가 지극히 가질 수 있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내재하고 있을지도 모를, 인간적인 연약함과 인간적인 한계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사진=세컨드윈드픽쳐스 제공
사진=세컨드윈드픽쳐스 제공

- 배우님들의 열연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배우님들과 작업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촬영현장에서는 힘들지 않은 순간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매 씬마다 난도가 높은 연기를 요하는 장면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촬영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18회차 촬영 기간 동안, 서로를 탓하지 않았고, 저마다 힘듦을 견디는 시간들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효원이 곰 세 마리 노래를 처연하게 부르던 그 엔딩 씬에서, 미련 없이 마지막 회차의 마지막 컷의 촬영을 마친 그 새벽의 순간, 저는 "오케이!!! 고생하셨습니다!!!!!" 하고 전에 없이 크게 외치며 크게 숨을 내쉬었던 것 같습니다. 절로 환하게 웃었습니다.

아주 찰나이지만, 다들 얼이 빠져서 서로를 바라보다가... 1초, 2초쯤 지나자 비로소 진짜 끝났다는 현실을 자각하고 하나 둘, 급격히 환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배우분들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그저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던 그 1-2초 정도의 찰나가...그리고 그 직후, 기쁨을 만끽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초긴장 뒤에 오는 안도감과 미련 없이 최선을 다한 뒤에 오는 성취감 같은 것이었습니다."

- 감독님께서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효원이 수연의 집, 안방에서 문고리에 스카프를 목에 맨 장면입니다. 이홍연 배우의 안전이 염려되어, 미술감독님과 저는 촬영 전에 똑같이 목을 매 보기까지 했습니다. 실제로 해보니 압박감과 공포감이 무척이나 크게 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과연 이게 잘 될까... 반신반의하고서 촬영에 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홍연 배우는 그 압박감과 위협감을 이겨내고 완벽하게 효원 역에 몰입하여 그 씬을 소화해 내었습니다. 저는 이홍연 배우가 목을 다 매고 나서 스스로 스카프를 벗어던지고 숨을 헐떡일 때 알았습니다. '오케이다' 하고요. 단 1테이크만에 말이죠. 저는 오케이를 속으로 확신하고 있었기에 컷을 하지 않고 그 이후의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홍연 배우는 끝까지 연기하였습니다. 1분은 족히 넘었을 것입니다. 조여오던 스카프를 벗어던지고 나서의 안도감, 한없이 차오르는 고통과 슬픔, 그 너머로 흘러넘치는 허탈감과 존재의 가벼움, 그 뒤에도 휘몰아치는 비애감...고독감... 그런 것들이 순차적으로 피어나고 있음을 저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홍연 배우가 효원 역에 완벽히 몰입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촬영을 준비하는 동안에, 감독인 제가 늘 그림을 그려왔던 것, 그 이상의 결과물 나왔기에 그 씬이 가장 애착이 갑니다."

사진=세컨드윈드픽쳐스 제공
사진=세컨드윈드픽쳐스 제공
사진=세컨드윈드픽쳐스 제공
사진=세컨드윈드픽쳐스 제공

- '수련'은 더러운 물밑에서 피어나는 꽃이며, 그 더러운 물밑에서 산소를 공급하면서 회복력을 전달한다는 비유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부 관객들은 이 영화에 대해 우울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감독님께서는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였으면 하시나요?

"저는 그 검은 물 밑에 있는 수련 식물의 뿌리 같은 사람들이 영화 수련의 인물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진흙탕같이 무척이나 탁해 보이는 그 물밑에서, 그들은 산소를 공급하면서 회복력을 전달해 줍니다. 그리고 저는 수련들이 그 생태계를 유지시켜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관객분들에게 그 ‘수련’ 같은 마음, 서로를 향한 끈을 놓지 않으면서도 소소하게 전달하는 진심, 그러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의 표현이 크고 대단한 것이 아닌 소소하고 미약한 것들이지만, 그것이 서로가 서로를 사랑을 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관객분들에게 전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의 영화적인 전달 방식이... 관객분들에게 강요하는 방식이 아닌 잔잔하게 관조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 다가가길 원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사... 느껴보십사... 라는 마음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관객분들께서 이 영화를 단순히 어둡고 답답한 이야기로만 남겨두지 마시고, 그 어둠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호흡을 이어가려는 인물들의 '회복에의 의지'를 함께 느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편 영화 '수련'은 오는 19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댓글 작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