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위 KTX 논란이 우리 사회에 던진 질문…마냥 비난만 해야 할까

잘못은 성찰하고 사과해야 하지만…장애인의 일상적 불안까지 묻혀선 안 돼

사진=박위 인스타그램
사진=박위 인스타그램

유튜버 박위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KTX에서 하차하던 중 휠체어가 사회복무요원의 발에 걸려 넘어졌고, 박위가 당시 상황이 담긴 CCTV 영상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영상에는 사고 장면뿐 아니라 사회복무요원이 박위에게 사과하는 모습까지 담겼다. 논란이 커지자 박위는 영상을 삭제하고 사과했다. 그는 당시 자신을 도와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근무자들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했다며 자신의 전달 방식이 미숙했고 생각이 짧았다고 밝혔다.

여기까지 놓고 보면 박위가 잘못한 것은 분명하다. 도움을 주던 사회복무요원이 고의로 사고를 낸 것도 아니고, 사고 직후 사과까지 했다. 그런 상황에서 수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에 CCTV를 공개한 것은 결과적으로 한 개인을 대중 앞에 세우는 일이 됐다. 특히 박위처럼 영향력이 큰 사람이 공개한 영상이라는 점에서 사회복무요원이 느꼈을 부담은 굉장히 컸을 것이다. 박위가 뒤늦게 후회한 것처럼 충분히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었다. 논란 이후 철도 종사자와 장애아 부모 등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렇다고 해서 박위를 이번 일 하나만으로 마냥 비난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박위에게 잘못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잘못은 잘못이다. 다만 그가 왜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반응했는지는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박위는 지난 2014년 사고로 전신마비 판정을 받은 뒤 지금까지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고 있다. 이제 그는 100만 명 구독자를 보유한 유명 유튜버가 됐고, 경제적으로도 과거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성공한 사람이다. 아무리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도 휠체어를 타고 살아야 한다는 현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고 당시 박위가 느꼈을 감정까지 우리가 쉽게 재단할 수 있을까. 예전에 지하철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승강장이나 열차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무언가에 걸려 제대로 이동하지 못하자 갑자기 화를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지나치게 예민하다고 볼 수 있었지만, 늘 휠체어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 분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어쩌면 그분은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작은 불편을 수없이 경험했을 것이다. 이동하려고 했는데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있었을 수도 있고,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공간과 마주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했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의 실수 때문에 움직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하루하루 쌓인 불편함이 어느 순간 사소한 사건 하나를 통해 폭발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화를 내는 행동이 언제나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박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회복무요원의 실수에 화가 날 수 있다. 위험한 상황을 많이 경험했으니, 감정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 감정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과정에서는 다른 사람의 입장까지 고려했어야 했다는 점. 특히 100만 명 구독자를 가진 크리에이터라면 더욱 그렇다. 그 부분에서 박위의 판단은 분명 아쉬웠다. 반대로 이번 일을 계기로 박위가 이야기하려 했던 장애인의 일상적 불안까지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번 논란을 보면서 오히려 우리 사회가 장애인의 '불편함'에는 익숙하지만 '분노'에는 지나치게 인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는 문턱 하나, 경사로 하나, 열차와 승강장 사이의 작은 틈 하나가 그들에게는 무거운 장벽이 될 수 있다. 그런 상황을 매일 경험하는 사람에게 "왜 그렇게 예민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박위는 이번 일에서 잘못한 부분은 사과하고 책임지면 된다. 실제로 그는 영상을 삭제하고 자신의 판단이 미숙했다고 사과했으며, 서울시 홍보대사에서도 자진 사임했다. 박위를 무조건 옹호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무조건 비난할 필요도 없다. 잘못은 잘못이라고 말하면서도, 박위가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는 이해해 주는 것.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정도의 '배려'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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