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을 대표하는 미스터리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세상을 떠났다. '용의자 X의 헌신', '백야행',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등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남긴 그의 족적은 일본뿐 아니라 한국 독자들에게도 각별하게 다가온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오랫동안 한국에서 가장 많이 읽힌 해외 작가 가운데 한 명이었고, 그의 소설은 한국에서도 여러 차례 영화화됐다.
이날 27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지난 23일 대장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68세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1958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그는 오사카부립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엔지니어로 근무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85년 '방과 후'로 제31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고, 1999년 '비밀'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 2006년 '용의자 X의 헌신'으로 제134회 나오키상을 받았다.
교보문고가 지난 2009년 1월부터 2019년 1월까지 10년간 국내 소설 누적 판매량을 집계한 결과,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약 127만 부가 판매돼 국내외 작가를 통틀어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베르나르 베르베르 등 한국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해외 작가들보다 높은 기록이었다.
특히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한국에서 하나의 현상에 가까웠다. 지난 2012년 12월 한국어판이 출간된 뒤 입소문을 타고 장기간 베스트셀러에 머물렀고, 2018년 종이책 누적 발행부수 100만 부를 넘어섰다. 전자책을 포함하면 120만 부 이상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한국 독자들을 향한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히가시노 게이고와 한국의 인연은 출판시장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의 소설은 한국 영화로도 태어났다. 대표적인 작품이 지난 2009년 개봉한 박신우 감독의 '백야행-하얀 어둠 속을 걷다'였다. 한석규, 손예진, 고수가 주연을 맡은 작품으로 히가시노 게이고가 1999년 발표한 동명 장편소설을 한국 정서에 맞게 각색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 약 95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한국판 '백야행'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영화가 원작의 이야기를 과감하게 축약했음에도 자신이 영상으로 표현되기를 원했던 세계를 훌륭하고 충실하게 구현했다고 해석했다. 일본 언론은 한국 영화의 높은 수준에 감탄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원작자가 상당 부분 각색된 영화를 이처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한국판 '백야행'은 인물들의 비극적인 관계와 멜로의 정서를 전면으로 끌어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야기가 한국 영화의 정서와 결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했다.
그 인연은 지난 2012년에 공개한 방은진 감독의 '용의자 X의 헌신'으로 이어졌다. 류승범, 이요원, 조진웅 등이 출연한 작품으로, 일본에서 이미 영화화된 작품을 다시 한국적으로 각색했다. 이어 2014년에는 정재영과 이성민이 출연한 ‘방황하는 칼날’이 개봉했다. 딸을 잃은 아버지가 가해자를 직접 추적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소년범죄와 사적 복수, 법과 정의의 경계를 묻는 작품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흔한 미스터리와 추리 소설가로 분류할 수는 없다. '백야행'에는 범죄로 연결된 두 인간의 비극적인 관계가 있고, '용의자 X의 헌신'에는 한 인간의 극단적인 사랑과 희생이 있으며, '방황하는 칼날'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분노를 통해 법과 정의의 한계를 묻는다.
그러한 점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은 한국 영화와 통하는 면이 있었다. 희생, 복수, 죄책감과 같은 감정을 장르적인 사건과 결합하는 방식이 한국 정서와도 잘 맞아떨어졌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는 이런 한국적인 장르 영화의 문법으로 번역할 수 있는 요소가 풍부했다. 일본의 사건과 인물을 한국으로 옮겨 놓아도 이야기의 핵심 주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만든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백조와 박쥐', '살인의 문' 등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준비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로 재탄생될 예정이다. 류승룡, 김혜윤, 문상민, 이채민, 윤경호, 고아성, 김민하 등 호화 출연진이 등장한다.
한국을 소재로 작품을 쓴 것도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한국 대중문화와 깊은 인연이 있었다. 그의 소설이 번역되어 지금도 많은 한국 독자들의 책장에 꽂혀 있고, 한국 배우의 얼굴과 대사를 얻어 영상화가 되고 있다. 한국 출판시장과 영화계가 오랫동안 함께 소비하고 재해석했던 그의 세계관이 비로소 완결된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한국과 이어진 인연을 돌아보며, 그의 소설들을 한 권씩 천천히 읽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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