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철들 무렵'은 서로에게 몸도, 돈도, 꿈도 저당 잡힌 세 사람의 이야기를 유쾌하면서도 짠한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인생 한 방을 꿈꾸는 철부지 아빠 상규(기주봉), 오디션을 전전하며 자신의 이름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딸 정미(하윤경), 남편과 20년 넘게 떨어져 자신만의 삶을 살아온 엄마(양말복)가 다시 얽히면서 벌어지는 가족극이다. 예고편을 살펴보면 세 인물이 얼마나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는지 보여준다.
상규는 일터와 집을 오가며 로또 번호를 고르고 술잔을 기울이는 인물이다. 금이 간 벽을 바라보며 "너도 이제 슬슬 갈 때가 됐나 보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자신의 삶 역시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상규는 현실을 정면으로 돌파하기보다 여전히 인생 한 방을 꿈꾼다.
딸 정미의 삶은 완전히 다르다. 영화와 드라마 현장에서 단역과 귀신 1, 2, 3 같은 역할을 전전하는 그녀는 이름 있는 배우가 되기 위해 오디션장을 떠돌아다닌다. "언제까지 귀신 1, 2, 3만 하고 있을 거야. 이름을 가져야지"라는 대사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어 하는 청춘의 절박함을 드러낸다.
엄마는 두 사람과 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다. 상규와 20년 넘게 떨어져 지내면서 고급스러운 욕조에서 목욕을 즐기고 태극권을 수련하는 등 자신만의 여유로운 싱글 라이프를 누리고 있다. 가족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서로 다른 남남처럼 살아온 셈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버텨오던 가족에게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찾아온다. 상규에게 암 전이와 함께 말기 진단이 내려진 것. 예고편은 이 순간을 기점으로 세 사람의 일상이 본격적으로 뒤흔들리기 시작할 것임을 보여준다.
특히 상규가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낸 아내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피가 물보다 진하긴 개뿔"이라는 카피는 꽤 신선하게 다가온다. 흔히 가족을 혈연과 희생의 공동체로 그리는 가족영화와 달리, 이 작품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쉽게 가까워질 수 없는 현실적인 관계에 주목하는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무거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비극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고편에는 경쾌한 음악과 직설적인 대사, 인물들의 엉뚱한 행동이 이어지며 블랙 코미디 스타일로 풀어낸다. 웃기지만 마냥 웃을 수 없고, 짠하지만 지나치게 감상적이지 않은 톤이 작품의 차별점으로 읽힌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영화의 핵심이다. 기주봉은 허세와 체념, 가족을 향한 미묘한 애정을 동시에 품은 상규를 특유의 생활 밀착형 연기로 표현한다. 하윤경은 오디션장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정신 똑바로 차려!"라고 외치는 장면을 통해 꿈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절박함과 애절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양말복 역시 오랜 시간 가족과 떨어져 살아온 엄마의 독특한 태도를 자신만의 존재감으로 완성한다.
'철들지 못한' 아빠와 아직 꿈을 포기하지 않은 딸, 그리고 가족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자신만의 삶을 살아온 엄마.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던 세 사람이 갑작스러운 위기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관심이 쏠린다.
한편 영화 '철들지 못한'은 내달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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