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희영 감독의 '사진의 얼굴'은 일본을 대표하는 포토저널리스트 구와바라 시세이(桑原史成)가 60년 동안 한국 현대사를 기록해 온 여정을 따라가는 포토멘터리다. 지난 1964년 처음 한국을 찾은 이후 청계천 서민들의 삶, 베트남 파병, 동두천 기지촌, 민주화 운동, 평양의 일상까지 10만 컷이 넘는 사진으로 한반도의 굴곡진 역사를 담아낸 그의 삶을 조명한다. 영화는 제27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된 바 있다.
예고편은 라이트박스 위 필름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90세 노장의 손끝으로 시작한다. 곧이어 렌즈 속으로 1960~80년대 한국의 모습들이 차례로 스쳐 지나간다. 청계천 골목의 서민들, 민주화 시위 현장, 거즈를 댄 아이, 주름진 노인의 손. 흑백 필름 속 인물들은 단순한 피사체가 아니라 당시 시대를 증언하는 사람들이 된다.
이어 '한국 국외 추방'과 '북한 입국 금지'의 붉은 문구는 영화의 긴장을 단숨에 끌어올린다. 구와바라 시세이는 실제로 남한에서는 추방 조치를 당하였고, 북한에서는 입국 금지 조치를 겪었다. 영화는 구와바라 시세가 그렇게 적대적인 시선을 받으면서도 카메라를 내려놓지 않았던 시간을 되짚는다. 감독 역시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추방된 일본인 사진작가'라는 그의 독특한 이력을 영화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60년간, 10만 컷에 담은 한국의 진짜 얼굴들'이라는 문장도 눈에 띈다. 5·18 민주화운동과 거리 시위, 청계천 사람들의 삶, 베트남 파병 장면 등이 필름 롤처럼 빠르게 이어진다. 서로 다른 시대의 장면들을 하나의 기억으로 연결하며 사진 한 장 한 장이 곧 한국 현대사의 파편임을 강조한다. "선생님의 작품 속에는 하나하나 드라마가 존재한다"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구와바라의 사진은 사건보다 사람을 중심에 둔다. 영웅보다 평범한 시민, 권력보다 민중의 얼굴을 오래 응시한다.
후반부에서는 그의 사진 철학이 직접 드러난다. "포토저널리스트는 잔혹하다. 나 역시 전쟁터에서 전투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최루탄 연기가 가득한 시위 현장과 현재의 그가 빗속에서 여전히 셔터를 누르는 모습이 교차되며 사진가 역시 현장을 견디는 또 다른 당사자였음을 보여준다. 국립현충원을 걷는 그의 뒷모습과 한국인 아내와 나누는 담담한 대화가 이어진다. "사진을 남기는 일에는 남들보다 두 배로 노력했다"라는 고백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처럼 들린다.
구와바라 시세이는 지난 1936년 일본 시마네현에서 태어났다. 일본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자 포토저널리스트로 평가받는다. 국제적으로는 일본의 미나마타병을 장기간 취재한 사진집으로 이름을 알렸으며, 이후 베트남전, 소련 붕괴기 아프가니스탄 등 세계 분쟁과 사회 현장을 꾸준히 기록해 왔다. 한국 역시 그의 대표적인 작업 가운데 하나다.
특히 한국 작업은 단발성 취재가 아니라 1964년부터 약 60년에 걸쳐 이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그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다시 한국을 찾았고, 영화는 과거의 기록들을 다시 만나는 과정을 따라간다.
'사진의 얼굴'이 흥미로운 지점은 현대사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대부분의 역사 다큐멘터리가 사건과 연표를 중심으로 흘러간다면, 이 작품은 사람의 얼굴을 통해 시대를 읽는다. 제목 그대로 사진 속 '얼굴'은 개인의 초상이면서 동시에 시대의 표정이다.
고희영 감독 역시 제주 해녀를 기록한 '물숨', '불숨', '물꽃의 전설' 등에서 공동체와 삶을 집요하게 기록해 온 다큐멘터리스트다. 이번 작품에서도 거대한 역사보다 그 안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얼굴을 통해 한국 현대사를 다시 바라보는 방식을 택했다.
국적과 이념의 경계를 넘어, 누군가는 반드시 기록해야 했던 시대를 끝까지 카메라에 담아낸 한 포토저널리스트의 삶을 통해 '역사는 결국 사람의 얼굴로 기억된다'는 사실을 묵직하게 증명해 내는 다큐멘터리로 기대를 모은다.
한편 영화 '사진의 얼굴'은 내달 2일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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