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주년을 맞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바로 미이케 다카시다. 그가 만든 작품들은 BIFAN의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다. 가장 유명한 '이치 더 킬러'부터 시작하여 비지터Q, 오디션, 아이와 마코토, 악의 교전까지 공포와 충격을 담은 영화들을 제작했다. 그의 영상미는 너무나 놀랍고 충격적이어서 강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특히 야마모토 히데오 작가의 '코로시야 이치'를 원작으로 한 '이치 더 킬러'는 두고두고 그의 명작으로 남아 있다.
미이케 다카시의 작품들은 그 특유의 유머 감각과 리듬감이 눈에 들어온다. 그는 공포와 코미디를 거의 구분하지 않는다. 긴장과 웃음, 공포와 황당무계한 설정, 무자비한 폭력성을 한 장면 안에 넣으려는 악취미가 있다. 그의 이러한 집착은 감정적으로 중심을 잡지 못한 채 불쾌한 인상으로 남게 된다. 미이케 다카시의 진짜 재능은 무엇일까.
'이치 더 킬러'를 다시 보면, 웃기는 대사들이 많다. 카키하라가 부하들을 갈구거나 이치를 훈련시킨 할아버지와 처음 만나는 장면, 이치를 못 이길 것이라며 카키하라를 조롱하는 전화 통화 등등 모두 일종의 '병맛'이라서 묘하게 무섭고 웃긴다. 자전거 바퀴를 이용한 과장된 CG 역시 그만의 독특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미이케 다카시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정말 정신이 없다. 가족 붕괴를 다룬 '비지터Q'는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을 정도의 참혹하고 별난 장면들이 속출한다. '오디션'은 어떤가. 로맨스 장르로 흐르던 전반부를 뒤집은 그로테스크하고 역겨운 후반부는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다. 그러던 그가 '카타쿠리가의 행복'이라는 영화를 통해 가족 뮤지컬 장르에 손을 대고 말았다. 이후 '이겨라 승리호(Yatterman)'라는 어린이 히어물에도 관심을 보였고, 유명한 게임을 원작으로 한 '역전재판(Ace Attorney)'도 만들었다. 공포물을 만들다가 식상했는지, 가족 영화도 찍고 뮤지컬도 찍고 할 것은 다 했던 것이다.


최근에는 미이케 다카시의 행보에 실망하는 팬들이 많다. 그런 면에서 '이치 더 킬러'는 원작 만화의 광기와 미이케 다카시의 감각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여전히 특별한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원작에 등장하는 변태들과 정신병자들을 줄인 대신에 만화적 과장과 기괴한 유머를 넣었다. 그 덕분에 단순히 야쿠자 범죄 영화가 아니라 컬트의 고전이 되었다.
BIFAN 30주년을 맞아 상영될 이번 '이치 더 킬러'는 폭력에 중독된 카키하라의 모습에 주목해 보자. 이 남자는 두목 안조에게 학대를 받던 마조히스트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고통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면서 끊임없이 자극을 찾아다닌다. 사실상 안조와 자신을 압도할 존재를 찾아다니는 것이다. 어쩌면 진짜 느껴보지 못한 고통을 동반한 '죽음'을 기다렸던 것일 수도 있다.
원작 만화는 처음부터 결말까지 냉혹하다. 이치를 훈련한 할아버지의 괴물 생산 공장은 계속 돌아간다. 미이케 다카시는 이런 악순환을 끊어내면서도 폭력에 매료되는 욕망은 계속될 것이라는 해석을 남긴다. 우리는 보통 범죄 영화에서 본능적으로 더 강한 놈을 찾아다닌다. 그런 면에서 카키하라는 관객의 분신과도 같다. 자신을 만족시킬 진짜 강한 놈을 찾아다니고 있으니까. 결국 카키하라는 구원받지 못하였고, 폭력에 대한 판타지가 얼마나 공허한지 알려주고 있다.
BIFAN과 함께했던 미이케 다카시 상영작들
▲2001년 5회 비지터Q
▲2002년 6회 미이케 다카시 특별전(아지에이터, 중국의 조인, 블루스 하프, 데드 오어 얼라이브, 카타쿠리가의 행복, 이치 더 킬러, 레이니 독)
▲2003년 7회 극도공포대극장 우두
▲2004년 8회 제브라맨
▲2006년 10회 마스터즈 오브 호러 에피소드13 : 임프린트
▲2011년 15회 닌자 키드
▲2012년 16회 아이와 마코토, 역전재판
▲2013년 17회 악의 교전, 짚의 방패
▲2014년 18회 두더지의 노래: 잠입탐정 레이지
▲2015년 19회 도쿄아포칼립스: 최후의 결전
▲2016년 20회 테라포마스
▲2017년 21회 오디션
▲2021년 25회 극장판 비밀X전사 팬터미라지!
▲2022년 26회 두더지의 노래 파이널, 요괴대전쟁: 가디언즈
▲2026년 30회 이치 더 킬러
BIFAN과 미이케 다카시가 함께한 세월은 꽤 오래되었다. 지난 2001년 '비지터Q'를 시작으로 특별전과 회고전, 신작 상영을 오가며 20년 넘게 영화제와 함께해온 대표적인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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