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위(2000)'는 지금 관점에서 보면 영화 자체의 완성도보다 당시 한국 공포영화의 풍경을 보는 재미가 더 큰 작품이다. 하지원, 최정윤, 김규리, 유지태, 유준상, 정준, 조혜영 등 호화 라인업의 배우들이 펼치는 한국판 하이틴 호러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는 영화다.
영화는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나 '13일의 금요일', '스크림'과 같은 하이틴 슬래셔에 가깝다. 과거의 비밀, 억울한 죽음, 죄를 숨기는 캐릭터들, 한 명씩 살해당하는 복수가 나오는 단순한 구조다. '가위'는 이런 청춘 호러의 문법에 귀신의 이야기를 덧붙여 꽤 성공적인 공포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지금으로 보면 클리셰 범벅의 전개지만, 2000년 당시 관객들의 반응은 꽤 호의적이었다. '여고괴담(1998)'이 성공을 한 이후에 한국 공포영화가 살아나기 시작한 시기였고, 관객들이 귀신물에 대해 면역이 별로 없었던 시절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불을 끄고 이불을 덮어쓴 다음에 공포영화를 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으니까.
이 영화에서 하지원을 빼놓을 수가 없다. 하지원은 '진실 게임(2000)'을 통해 라이징 스타로 발돋움하였고, 안병기 감독과 함께 '폰(2002)'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 이후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대중스타로 자리매김했다. '가위'의 명목상 주인공은 예진(김규리)이지만, 사실 관객들의 시선은 대부분 하지원이 연기한 경아를 향했다. 보통 이런 영화에서는 귀신 분장을 한 배우에 눈이 잘 가지 않지만, 하지원의 표정 연기가 그만큼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버스 전복 장면은 지금 봐도 꽤 섬뜩하다. 어린 경아가 피칠갑을 한 채 걸어 나오는 장면은 하지원의 독기가 서려 있는 눈빛과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어떻게 보면 관객들도 이때부터 하지원을 더 기억하게 되었을 것이다. 청순한 스타일의 배우였던 김규리와 달리 하지원은 에너지부터 남달랐다. 그녀는 '진실 게임'부터 감정을 아끼지 않는 배우로 활약하며 독한 배우라는 이미지까지 생겼다.
하지원, 유지태, 유준상, 최정윤 등 이제는 관록 있는 대배우들이 되었지만, '가위'에서는 아주 앳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지금 다시 보면 거의 타임캡슐과 같은 느낌이다. 2000년대 한국 배우들의 젊은 시절을 기록한 작품으로 가치가 있다. 이번 3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 상영된 이유도 한국 호러 르네상스 초기에 등장했던 작품을 다시 조명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관객들은 너무 뻔해 보이겠지만, 지금의 대배우들이 탄생하는 순간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사적 가치는 충분하다. 안병기 감독과 하지원이 두 번째로 만난 '폰'도 충분히 재밌는 영화다. 당시 필수품이 되어가던 휴대전화를 공포의 매개체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시대성도 있었고 미스터리 구조도 나름 탄탄했다.
한편 영화 '가위'는 제30회 BIFAN 스트레인지 오마쥬 섹션에서 상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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