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AN 30주년 특집] '궁녀' 지금 보니 더 무섭다…시대를 앞서간 궁중 호러

여성들의 욕망과 공포를 담아낸 한국 사극 호러의 이정표

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궁녀(2007)'는 중후반 이후에 장르를 전환하면서 혼란을 줬던 작품이었다. 의녀 천령(박진희)이 목을 매단 채 발견된 궁녀 월령(서영희)의 시신을 조사하면서 미스터리 수사극처럼 보였다. 천령이 진실을 밝혀서 범인을 처벌할 것이라는 자연스러운 예측이 완전히 빗나가 버린다. 아이러니하게도 20년 가깝게 세월이 흘러 개최되는 제3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의 시선으로 본다면 평가가 달라진다.

많은 영화 팬들도 알다시피 BIFAN은 판타지, 컬트와 호러, 장르가 혼합된 기괴한 상상력 등이 담긴 다양한 작품들을 소개해 왔다. 그런 면에서 '궁녀'는 마치 고딕 호러 장르처럼 보인다. '대장금'이나 '뿌리깊은 나무'처럼 사극 드라마에서 봤던 궁궐의 풍경을 볼 수가 없다. 정치적인 공간이 아니라 마치 거대한 지하 감옥처럼 보인다.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는 바로 '쥐부리글려'다. 궁중에서 어린 나인들에게 입조심하라는 뜻으로 횃불을 들이대며 입을 지지는 시늉을 했다고 한다. 얼핏 들으면 황당하면서도 끔찍한 상상도 하게 된다. 그 안에서 우리가 차마 몰랐던 욕망이 충돌하며 암투가 벌어졌을 수도 있다. 입을 지지는 시늉을 했다고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준 것처럼 궁녀들끼리 기강을 잡겠다며 끔찍한 처형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런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궁궐 내부를 어둡게 묘사했다. 조선 궁궐을 재현했다기보다 여성들이 갇혀 사는 감옥처럼 보이기 위해 공을 들였다. 궁녀들은 하나같이 표독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고, 조금이라도 권위를 침범당하는 것 같으면 근엄한 목소리로 경계한다. 암투의 모습들도 우리가 봤던 사극 드라마로 보이지 않고, 마녀재판이나 이단 심문과 같이 고딕 호러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캐릭터들은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처럼 차가운 얼굴들을 하고 있어서 다소 과하다는 인상도 준다.

이 영화는 단연 여성들의 공포물이다. 임금은 없다시피 하고, 유일한 용의자로 나오는 이형익(김남진)도 크게 존재감이 없다. 실제로 영화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의녀 천령과 희빈(윤세아), 심 상궁(김미경), 감찰 상궁(김성령), 벙어리 궁녀 옥진(임정은) 등이다. 모든 궁중 권력이 여성들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다.

사진=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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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점은 이 여성들이 모두 궁이라는 시스템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천령과 월령, 희진과 심 상궁, 감찰 상궁까지 모두 세자의 핏줄이라는 체제 하나 때문에 생사를 오간다. 누군가는 그 체제를 유지하려고 희생양을 찾고 있고, 다른 누군가는 체제에 대한 복수를 위해 과도한 집착을 보인다. 어찌 보면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괴물은 궁궐 그 자체일 것이다.

지금 보면 미스터리의 힘이 후퇴하면서 갑작스러운 장르 전환이 다소 당황스럽다. 일부 장면에서는 미스터리의 힘이 약화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대신에 조선시대 궁중과 고딕 호러 분위기의 독특한 결합,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여성 중심의 사극 공포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BIFAN의 정체성과 딱 들어맞는다. 여기에 서늘한 분위기가 지배하는 강렬한 미장센과 배우들이 열연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한편 영화 '궁녀'는 제30회 BIFAN '여성 감독 장르영화 11' 섹션에서 상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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