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설우인은 이미 지난해 AI로 제작된 옴니버스 영화 '코드 G-주목의 시작'에 참여한 바 있다. 마지막 영화 '데이원' 연출자로 나선 그녀가 이번에는 AI 장편 영화 '스틸레이'로 관객과 만난다. 배우의 경험 덕분인지 인터뷰를 하면서 전통적인 감독의 스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나리오, 비주얼, 캐릭터 의상과 설계, 편집과 더빙, 사운드 믹싱까지 기존 영화 제작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 것이다. 무엇보다 1만 3천 개가 넘는 컷들을 남겨 놓았다는 점에서 창작자의 고민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AI 영상은 꾸준히 발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관객들은 기술적 실험이라는 점을 떠올린다. 발전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지만, AI 영상에 대한 어색한 느낌은 완전히 지울 수가 없다. 설우인 감독은 '스틸레이'가 그런 가벼운 호기심과 영화적 완성도 사이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AI가 영화의 미래를 어떻게 바꿔 놓을 것인가. '스틸레이'는 그 질문에 대한 설우인 감독의 첫 번째 답이다. 확실한 것은 여전히 영화를 먼저 생각하는 창작자의 고민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래는 설우인 감독과의 일문일답.
- 10억 원 미만의 예산과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SF 액션 영화를 완성한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로 보입니다. 기존 방식으로 제작했다면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 AI가 이 부분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꿔 놓았나요?
"가장 큰 변화는 제작 규모라고 생각합니다. '스틸레이'에는 로봇 전투부터 도심 액션, 대규모 전투까지 기존 방식으로 제작했다면 촬영과 세트, CG, VFX 에 상당한 인력과 시간이 필요한 장면들이 많습니다. 지금의 제작 규모와 기간으로는 현실적으로 선택하기 어려운 장면들이었죠.
AI-VFX 를 활용하면서 그 선택의 폭이 굉장히 넓어졌습니다. 특히 실제 작업에서 크게 체감했던 건 컷을 훨씬 유연하게 설계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기존 제작에서는 이미 촬영이 끝났거나 VFX 공정에 들어간 장면의 구도나 액션을 크게 바꾸려면 그만큼 다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AI 로 작업할 때는 실제 촬영장에서 물리적으로 연출할 수 없는 다양한 카메라 각도 혹은 카메라 무빙을 연출하거나, 공간 자체를 다시 설계해 보는 식의 시도가 가능했습니다. 처음 콘티에 없던 컷이라도 더 좋은 장면이 나오면 과감하게 가져오기도 했고요. 저는 이게 AI가 제작비를 줄여주는 것만큼 중요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 결정한 것을 그대로 완성하는 데 집중하는 게 아니라, 만드는 과정에서도 계속 더 좋은 선택지를 찾아볼 수 있으니까요.
결국 AI가 바꾼 건 단순히 제작비나 제작 기간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한된 제작 환경 안에서도 장면의 규모나 아이디어를 먼저 포기하지 않고, 구현해본 뒤 선택할 수 있게 됐다는 것. '스틸레이'를 만들면서 가장 크게 체감한 변화는 그 부분이었습니다."
-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생성형 AI를 활용해 이미지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감독님도 머릿속으로 그린 이미지와 AI가 만들어낸 이미지가 많은 차이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 차이를 좁히는 과정에서 감독님의 역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오히려 처음부터 AI를 강하게 통제하려고 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생성형 AI의 특성상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가 나올 때가 있는데, 그 결과가 오히려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인상적인 경우가 있거든요.
물론 반드시 정확하게 구현해야 하는 장면은 다릅니다. 이미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구도나 움직임, 캐릭터의 행동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다면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끈질기게 통제하고 반복합니다. 반대로 조금 더 확장이 필요한 장면에서는 프롬프트를 의도적으로 열어두는 편입니다. AI 가 어느 정도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두고, 그 안에서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선택지를 발견하는 거죠.
AI 아티스트들과 작업할 때도 비슷합니다. 프리프로덕션에서 작품 전체가 지켜야 할 룰과 방향은 명확하게 공유하지만, 그 범주 안에서는 각 아티스트가 다양하게 시도할 수 있도록 열어두려고 합니다. 그리고 나온 컷들을 보면서 어떤 결과를 선택하고, 어떻게 연결해야 하나의 장면으로 완성되는지를 계속 판단합니다. 그래서 AI 작업에서는 처음 생각했던 이미지를 얼마나 정확하게 구현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계획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가 작품 안에서 더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는지를 한 번 더 보는 거죠. 실제로 그렇게 발견한 장면들도 꽤 있었습니다.
결국 AI 영화를 연출하면서 감독의 역할은 모든 결과를 통제하는 것보다는, 작품이 가야 할 방향과 기준을 명확하게 세우고 그 안에서 어디까지 통제하고 어디까지 열어둘 것인지를 계속 판단하는 일에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아직 그 적절한 지점을 계속 찾아가는 중입니다. 다만 AI가 만들어내는 변수를 무조건 줄이려고 하기보다는, 작품의 방향을 잃지 않는 범위 안에서 그 변수를 어떻게 새로운 가능성으로 가져올 것인가. 그게 AI로 연출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입니다."
- AI 영화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가 있다면, 캐릭터와 장면의 일관성일 것 같습니다. 영화를 제작하면서 AI의 한계를 어디까지 체감하셨나요?
"'스틸레이'는 약 6개월간 제작한 작품입니다. 생성형 AI 기술의 발전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당시 저희가 사용했던 모델과 지금의 모델 사이에도 꽤 큰 기술적 차이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캐릭터의 일관성이 가장 큰 과제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장편을 만들어보니 그보다 더 어렵게 느껴졌던 건 공간의 연속성과 인물의 블로킹이었습니다. 특히 여러 인물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움직이는 드라마 장면에 많은 공을 들여야 했습니다. 앞선 컷에서 인물이 어디에 있었는지, 어느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다음 컷에서 어떤 동선으로 이어지는지를 유지해야 하고, 동시에 공간의 구조나 배경의 디테일, 조명까지 연결되어야 하니까요. 한 컷만 놓고 보면 상당히 좋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 컷의 앞과 뒤를 연결하는 순간에는 전혀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영화는 결국 수많은 컷이 하나의 시간과 공간 안에서 이어져야 하기 때문에, 여러 컷을 긴 호흡으로 연결하는 데는 당시 AI의 한계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지점에서는 연출적인 판단이 중요했습니다. 기술적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순간에 처음 계획했던 장면을 끝까지 고집하기보다는, 그 장면에서 반드시 전달해야 하는 감정과 정보가 무엇인지를 먼저 봤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유지하면서 다른 앵글이나 컷의 구성으로 전환하는 식으로 장면을 다시 설계했습니다.
결국 '스틸레이'를 만들면서 가장 크게 체감한 AI의 한계는 개별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능력보다, 그 이미지들을 하나의 연속된 영화적 흐름으로 유지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좋은 한 컷을 만드는 것과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것은 분명 다른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장편으로 갈수록 각각의 컷을 얼마나 잘 만들어내느냐 못지않게, 그 컷들을 어떻게 연결하고 전체 흐름을 유지할 것인가가 훨씬 중요했습니다."


- AI 파이프라인으로 전 과정을 구축했다는 점이 놀랐습니다. 실제 AI를 하나의 제작 도구로 사용하셨나요? 아니면 기존의 영화 제작 방식과 AI를 결합한 새로운 방식에 가까웠나요?
"사실 저는 둘 다 맞다고 생각합니다. '스틸레이'는 영화 전체를 생성형 AI와 AI-VFX 기술을 활용해 제작했기 때문에, AI를 하나의 핵심적인 제작 도구로 사용한 것도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존의 영화 제작 시스템을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만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영화가 만들어지는 기본적인 구조와 흐름은 기존의 제작 방식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기본적인 제작의 흐름도 기존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키비주얼을 만들고, 로케이션과 캐릭터, 의상, 공간 등을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설계합니다. 그 과정이 끝나면 실제 영화가 크랭크인 하는 것처럼 본격적인 생성과 제작에 들어갑니다. 다만 실제 촬영이나 CG, VFX 를 통해 구현했던 영역의 상당 부분을 생성형 AI 와 AI-VFX 를 통해 제작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100% 생성형 AI로 영화를 만들수록 프리프로덕션이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생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워낙 많기 때문에 사전에 작품의 기준을 명확하게 만들어놓지 않으면 제작이 진행될수록 방향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틸레이' 역시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세부적인 부분까지 미리 설정하고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전투가 진행되면서 스틸레이의 상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인물이나 공간이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등을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설계했습니다. 이런 기준이 있어야 서로 다른 시점에 만들어진 수많은 컷들이 결국 하나의 시간과 이야기 안에서 연결될 수 있습니다. 프로덕션 이후에는 다시 기존 영화 제작의 흐름을 따라갔습니다. 편집을 통해 영화의 전체적인 호흡을 만들고, 더빙을 비롯해 사운드와 믹싱, DI 등 기존 영화와 동일한 후반 작업을 거쳐 최종적인 작품으로 완성했습니다.
결국 '스틸레이'는 기존 영화 제작의 구조 안에 AI라는 새로운 제작 방식을 결합하고, 그 과정에서 저희에게 맞는 제작 시스템을 구축해나간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 AI의 발전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여전히 영화의 완성도보다 기술적 실험이라는 점에 더 관심이 많을 것 같습니다. '스틸레이'를 하나의 완성된 영화로 받아들였으면 하는 지점은 무엇인가요?
"사실 저희가 가장 경계했던 것도 그것입니다. 관객이 극장에 들어와서 90 분 동안 계속 ‘이 장면은 AI로 어떻게 만들었을까’를 생각한다면, 영화로서는 오히려 아쉬운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스틸레이'를 만들면서 기술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지만, 결국 관객에게 남아야 하는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캐릭터와 이야기, 액션과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스틸레이'를 제작하면서 OK를 제외하고도 남겨둔 컷만 약 1만 3천 개입니다. 그 과정에서 버린 결과물은 그보다 훨씬 많고요. 결국 그 수많은 결과 가운데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리고, 어떻게 연결해서 하나의 장면과 이야기로 완성할 것인지는 계속 사람의 판단을 거쳐야 했습니다.
도구는 AI였지만, 그 도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든 것은 결국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후반 작업 역시 일반 영화와 마찬가지로 편집과 더빙, 사운드, 믹싱, DI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의 극장용 영화로 완성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AI 기술을 사용했다는 것은 이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이고, 극장에 들어선 관객이 평가하는 것은 결국 영화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스틸레이'를 제작한 약 6 개월 동안에도 생성형 AI 기술은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저희 역시 이번 장편을 만들면서 많은 경험을 축적했고요. 그래서 앞으로 발전할 기술과 이번 작품을 통해 얻은 제작 경험이 다시 만났을 때, 다음에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저 역시 굉장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100% 'AI-VFX 영화'에 대한 호기심으로 영화를 보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AI라는 제작 방식을 잠시 잊고, 그냥 한 편의 영화로서 장면과 이야기를 따라가 주셨으면 합니다. 기술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해서 결국 영화 자체를 보게 되는 것. '스틸레이'가 그 사이를 연결하는 작품이 되었으면 합니다."




- 스틸레이가 성공 사례로 남는다면, 앞으로 국내 창작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칠 것 같습니다. 앞으로 AI 영화 제작에서 창작자들이 꼭 지켜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요?
"저는 AI와 창작자가 융합하는 건 이제 너무나 자연스러운 시대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AI 는 더 발전할 것이고 창작의 많은 영역에서 함께하게 되겠지만, 그 안에서 창작의 주도권은 창작자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AI가 수많은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그중 무엇을 선택하고 어디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더 발전시킬 것인지는 결국 창작자의 몫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결국 기술이 아닌, 한 사람의 고유한 취향이라고 생각해요. 기술은 공유할 수 있지만, 사람이 살아오면서 쌓아온 경험과 그 경험에서 만들어진 취향과 감각은 누구도 완전히 똑같이 가질 수 없는 고유한 영역이니까요.
저는 창작이라는 게 결국 자기 안에 있는 무언가를 표현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끼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에 대한 답은 결국 자신의 경험과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고, 창작자는 그것을 믿고 표현할 수 있는 자기만의 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AI와 잘 융화하고 서로 좋은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킬지에 대한 주도권은 창작자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 주도권이 분명하다면 AI는 창작자를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창작자의 생각과 표현을 더 넓게 확장해 주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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