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김혜자의 스크린 복귀작 '여전히 찬란하게'가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됐다. 60년 만에 다시 만난 두 친구의 우정을 중심으로 세월과 기억, 상처를 그린 작품으로, 김혜자의 깊이 있는 연기와 송일곤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 만난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은다.
영화는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단짝 친구 정임을 60년 만에 다시 만난 순옥의 이야기를 그린다. 어린 시절 시골 마을에서 함께 노래자랑을 꿈꾸던 두 사람은 다시 만난 뒤 서울행을 결심한다. 설렘도 잠시, 순옥은 정임이 자신의 이름은 물론 두 사람이 함께했던 시간과 꿈까지 조금씩 잊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순옥은 사라져 가는 친구의 기억을 붙잡기 위해 과거의 이야기를 꺼낸다. 영화는 현재의 두 사람과 1942년 어린 시절의 두 사람을 오가며,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우정의 기원과 그 안에 감춰진 사연을 풀어낸다.
예고편 역시 이러한 작품의 정서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김혜자가 연기한 노년의 순옥이 "하루하루는 지독시리도 안 가는데, 10년, 20년은 금방 지나가더라"라고 말한 대사가 의미심장하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다시 만난 친구와 서울 나들이를 준비하며 어린아이처럼 설레는 두 사람의 모습은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정임이 기억을 잃는 것으로 보이는 순간에 분위기가 달라진다. 이후 어린 시절의 두 사람이 등장하고, 웃음과 행복으로 가득했던 순간 사이로 누군가를 피해 벽장에 숨거나 어두운 밤길을 지나가는 장면들이 교차한다.
과거와 현재의 손길을 겹쳐 보여주는 장면은 영화의 핵심 정서를 압축한다. 어린 시절 서로의 뺨을 어루만지는 두 소녀의 모습과 노년의 두 사람이 서로를 보듬는 모습이 이어지면서, 기억은 희미해져도 두 사람이 공유한 관계와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두 사람이 함께 꿈꿨던 노래자랑은 추억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작품의 중요한 장치로 보인다. 1942년, 뛰어난 노래 실력을 가진 정임과 곁에서 응원하던 순옥은 서울에 가서 노래하고 돈을 벌겠다는 꿈을 꾼다. 이후에 마을에 공장 취직을 빌미로 소녀들을 데려간다는 소문이 퍼지고, 두 사람은 위협을 피해 몸을 숨기게 된다. 아마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보여주는 것으로 보이는데, 10년 만에 개봉하는 '귀향 언니야 이제 집에 가자'와 같은 감동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예고편은 이 과거의 사건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은 채 눈물과 긴박한 장면을 짧게 제시한다. 60년 동안 이어진 우정뿐 아니라 두 사람이 어린 시절 함께 겪었던 사건이 현재의 관계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자극한다.
후반부의 분위기는 다시 밝아진다. 밤거리에서 춤을 추고, 산 정상에서 두 팔을 벌려 바람을 맞고, 풀밭에 나란히 누워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두 사람의 모습이 이어진다. "이제 그만 울고, 웃자"라는 대사는 상처와 상실을 바라보는 방식이 절망보다는 삶에 대한 긍정과 위로에 가까울 것임을 암시한다.
'여전히 찬란하게'는 김혜자의 연기 인생 65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오랜 시간 관객과 시청자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해 온 김혜자가 노년의 순옥을 통해 어떤 감정의 결을 보여줄지 관심이 쏠린다.
여기에 거미숲, 마법사들, 오직 그대만 등을 연출한 송일곤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다. 차세대 배우 박서경, 최주은, 문성현을 비롯해 차미경, 이세영 등이 함께 출연해 어린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는 인물들의 시간을 완성한다.
60년의 시간을 사이에 둔 두 친구의 재회, 하나씩 사라지는 기억, 그리고 끝내 붙잡고 싶은 찬란했던 순간들. 김혜자와 송일곤 감독의 만남으로 주목받는 '여전히 찬란하게'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어떤 반응을 이끌어낼지 관심이 모인다. 영화는 내달 극장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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