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호프'의 신 스틸러로 평가받는 배우 음문석이 긴 무명 시절을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아버지를 떠올렸다. 서울행을 결심하던 시기에 버스터미널에서 아버지와 만난 일을 계기로 지금의 배우가 됐다고 고백한 것이다.
이날 5일 음문석은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가난했던 무명 시절과 배우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최근 영화 '호프'에서 강렬한 연기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그는 "원래 꿈은 배우가 아니라 댄서였다"라고 밝혔다.
충남 아산에서 자란 그는 지역 축제에서 무대를 본 뒤 춤에 매료됐고, 16세의 나이에 서울 방배동으로 올라왔다. 처음에는 아는 형 집에 얹혀살았지만 오래 신세를 지는 것이 미안했고, 이후에는 동료 댄서들의 집을 전전하며 생활을 이어갔다. 밥을 차리고 빨래를 해주며 눈치를 보며 지냈고, 수입은 거의 없었다. 하루 종일 방송 활동을 해도 손에 쥐는 돈은 5천 원에 불과했고, 빵과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웠다. 1년 중 대부분을 라면으로 버텼고, 고향에서 보내준 김치가 가장 큰 버팀목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힘들었던 시기에 그를 붙잡아 준 것은 아버지였다. 생활고에 지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버스터미널에서 돈을 건네고 돌아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잊지 못했던 것이다. 음문석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독해져야겠다고 다짐했고, 결국 그 결심은 20년 넘는 무명 생활을 견디게 한 원동력이 됐다.
24세였던 2005년에는 SIC로 첫 정규앨범을 발표하며 데뷔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면서 7주 동안에 하루 30분만 잠을 자는 생활을 이어갔다. 크럼프를 추던 중 어깨를 크게 다쳐 3년 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고, '댄싱9'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뒀음에도 기대했던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춤추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연기력이 늘어야 한다고 깨달았다. 이후 연기를 접한 뒤 예상과 달리 큰 재미를 느꼈고, 이후 수없이 많은 오디션에 도전하며 자신만의 노하우도 쌓았다. 오디션장에서 커피를 건넸을 때의 반응만 봐도 상대의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는 일화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그렇게 지난 2017년 영화 '공조'에서 작은 배역으로 상업영화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배우 활동과 함께 단편영화 제작에도 매달렸다. 연기하는 친구들을 데리고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과 편집까지 맡았으며, 그렇게 만든 두 작품은 모두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항공료와 체류비를 모두 사비로 부담해야 했지만, 언어도 통하지 않는 프랑스로 향했고 현지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 모녀의 도움을 받아 영화제 현장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대중에게 음문석의 이름을 각인시킨 작품은 SBS 드라마 '열혈사제'였다. 그는 영화 '귓속말'에서 함께했던 이명우 감독의 제안으로 오디션을 봤고, 단발머리 분장을 한 영상을 직접 촬영해 보내며 역할을 따냈다. 그는 "감독님께 너무 감사해서 지금도 한 달에 두세 번은 연락을 드린다"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후 음문석은 영화 '범죄도시2', '육사오(6/45)' 등을 통해 충무로의 신 스틸러로 자리 잡았다. ENA 드라마 '야한(夜限) 사진관'에서는 주연급으로 활약했고, 최근에는 SBS 드라마 '모범택시3'에서 빌런으로 변신하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최근 영화 '호프'에서는 색다른 연기를 선보이며 관객들뿐만 아니라 봉준호와 황동혁 등 거장 감독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긴 무명 끝에 신인연기상을 거머쥔 순간에도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아버지였다. 당시 투병 중이던 아버지는 시상식을 끝까지 지켜봤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는 말을 남겼다. 음문석에게 배우는 단순한 성공이 아니라, 묵묵히 지켜주신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켜낸 것이다.
한편 음문석 프로필은 1982년생으로 나이는 43세, 소속사는 고스트 스튜디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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