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 허범욱 감독의 유작 장편 애니메이션 〈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Pig That Survived Foot-And-Mouth Disease)가 개봉을 확정했다.
〈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는 살처분 구덩이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돼지 'H'와 평생 폭력과 괴롭힘에 시달린 군인 '정석'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과 짐승의 경계, 생존과 폭력의 의미를 그린 하드보일드 지옥 동화다. 허범욱 감독이 지난 2015년부터 오랜 기간 공들여 개발해 완성한 두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공개된 메인 예고편은 작품의 기괴하고 어두운 세계관을 집약해 보여준다. 붉게 일그러진 돼지들의 형상과 노란 눈동자, 핏자국이 선명한 군복, 방역 본부 출입 금지 테이프로 둘러싸인 핏빛 흙밭이 차례로 등장하며 불안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정석을 향해 쏟아지는 "피해만 주지 말라고", "너 때문에 왜 우리가 고생해야 돼?"라는 폭언은 그가 처한 가혹한 현실을 드러낸다. 축 늘어진 정석에게 "힘들지?"라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땅속에서 기괴한 돼지의 형상이 솟아오르면서 현실과 악몽의 경계가 무너진다.
이어 탈영과 살인 사건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급격하게 전환된다. 빗속을 달리는 정석과 텅 빈 축사, 숲속에 놓인 라디오와 돼지 형상의 괴물이 교차하며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라디오에서는 "구제역 발생 지역 인근 군부대에서 살인 후 무장 탈영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라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정석은 "나는 잘못 없어, 다 너희들 때문이야"라고 절규한다.
후반부에서는 인간과 돼지의 경계가 더욱 모호해진다. 동굴 속 돼지들 사이로 인간의 형상을 한 존재가 등장하고, 피범벅이 된 돼지 얼굴을 움켜쥔 인물과 거대한 수인형 존재의 모습이 이어진다. "죽지 않으려면 인간이 돼야 해, 얼굴까지 완벽하게", "생긴 대로 살아, 어디서 인간 흉내야"라는 대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생존을 선택하는 존재들의 충돌을 보여준다.
"돼지는 살고 싶었고 인간은 죽고 싶었다"라는 카피는 두 주인공의 뒤바뀐 욕망을 압축한다. 붉은 피와 뼈, 태그가 달린 돼지의 비명, 불타는 산과 방독면을 쓴 인물 등이 연이어 등장하며 작품이 생존과 폭력에 대한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에는 "억지로 살 필요 없어, 여기서 끝내자", "이미 시작부터 망가진 거야"라는 절망적인 대사가 이어지고 "지옥 속에서 우리를 구제하소서", "인간은 결국 죽거나, 죽이거나"라는 문구가 작품의 잔혹한 세계를 강조한다.
'연상호 감독 〈돼지의 왕〉을 잇는 K-애니의 상상력'이라는 문구도 눈길을 끈다. 실제로 이 작품은 故 허범욱 감독 특유의 독창적인 상상력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인간이 되는 돼지와 짐승이 되는 인간이라는 뒤틀린 설정을 전면에 내세운다.
故 허범욱 감독은 인간 사회의 폭력과 약육강식의 구조를 기괴한 동물적 이미지와 결합했다. 세계 최대 애니메이션영화제 중 하나인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를 비롯해 세계 35개 영화제에 초청됐으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 등 국내외 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선보였다.
지난 12일에는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에서 故 허범욱 감독 추모 특별 상영이 진행됐다. 이날 상영에서는 감독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 〈구질대지〉와 함께 〈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가 공개됐으며, 허범욱 감독의 작업 세계를 돌아보는 전시와 추모 행사도 마련됐다.
〈구제역에서 살아 돌아온 돼지〉는 내달 21일 전국 극장에서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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