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992년 7월, 런던 윔블던 커먼에서 23세의 레이첼 니켈이 산책하던 중에 무참하게 살해당했다. 무려 49차례나 흉기에 찔렸고 성폭행까지 당한 사건이었다. 한낮에 공원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 것도 문제였지만, 두 살배기 아들이 유일한 목격자였다는 사실이 더 큰 충격이었다.
당시 영국 언론은 국가적 공포 수준으로 보도했고, 경찰은 엄청난 압박을 받았다. 사건 현장에 자주 나타난 남자를 상대로 급하게 혐의를 찾기 시작했다. 사회성도 부족해 보이고 성적 판타지가 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사실상 용의자가 됐다. 문제는 DNA도 없고, 목격자도 없고, 흉기도 없다는 점. 사실상 증거 불충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경찰은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허니트랩'이라는 함정 수사까지 하며 논란을 자초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어린 목격자(The Witness)'는 처음부터 두 살배기 아들의 증언에 집중한다. 사실상 어린 아들이 유일한 목격자였다는 점을 강조하며, 어째서 아들만 살아남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한다. 얼핏 보면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사극처럼 보이지만, 이 작품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남은 가족의 이야기에 가깝다.
실제 경찰도 아들의 증언이 절박했을 것이다. 드라마에서도 아버지가 의미 있는 증언을 끌어내려고 노력하고, 경찰도 아들의 스티커를 얼굴과 몸에 붙이는 일을 당하면서까지 범인의 몽타주를 찾아내려고 한다. 드라마가 이렇게 수사극의 형식을 띠고 있는 사이에 예상보다 빠르게 10년 후의 일상을 보여준다. 범인에 대한 단서가 드러나기도 전에 두 살배기 아들이 벌써 청소년이 되어 있는 것이다.
레이첼 니켈 사건을 모른 상태로 드라마를 보면 약간 당혹스럽다. 보통 이런 작품들은 피해자의 자녀가 커서 정의를 추구하거나 복수를 꿈꾸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아들은 의아하게도 범인의 행방이나 살해 동기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정의를 꼭 실현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지만, 아들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인다.
아들이 이 지경까지 온 배경에는 언론의 광기와 경찰의 확증편향도 영향을 끼쳤다. 언론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카메라를 들이밀며 인터뷰를 하려고 들었고, 경찰은 특정 용의자에게 확신을 갖고 결론을 세운 뒤에 증거를 찾으려고 했다. 그 때문에 유족은 계속 지쳐가고 있었고, 10년이 지난 2004년에도 더는 '진실'이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특히 아들은 그렇게 떠난 엄마까지 원망하게 되면서 비행청소년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결국 범인도 찾았고, 관객이 원하는 결말을 보여준다. 우리가 흔히 아는 범행 동기도 나오고 정의 구현을 하는 듯했지만, 작품의 진짜 핵심은 아버지의 대사에 있다. 아버지는 여전히 범행 동기, 즉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그것이 아내와 아들에 대한 도리라고 믿는 것이다. 아들은 비행청소년으로 전락해서 속을 썩이지만, 결국 인내를 갖고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려는 아버지의 진심에 조금씩 다가서게 된다.
아버지와 아들은 10년 넘게 사건 속에서 살았다. 사실상 범인과 싸웠다기보다 경찰 및 언론과 싸운 세월이었다. 애초부터 이 작품은 범인을 잡는 순간을 클라이맥스로 보여줄 이유가 없었다. 아버지의 극복, 즉 아들과 함께 회복의 시작을 알리는 대사가 큰 울림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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