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드라마 '가스인간'은 연상호의 각본 작품이라고 하지만 다소 위화감이 느껴진다. 기본 틀만 보면 연상호스러운 면이 있으나, 중반부 이후부터 전개가 늘어지고 설교식의 대사들이 많이 나오면서 몰입감이 급격히 떨어진다. 가스인간의 정체와 반전은 단서조차 별로 주지 않아서 뜬금없이 느껴졌다.
4회에 등장한 후지타와 카호 남매만 보더라도 연상호의 기존 작품과 결이 달라 보인다. 이들은 그다지 인기가 없는 공포 콘텐츠 스트리머인데 우연히 가스인간의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한다. 그 단서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호러를 콘셉트로 한 걸그룹과 후지타가 존경한다는 괴짜 감독은 전형적인 일본식의 연출이었다. 만약 연상호 감독이 연출했다면 이런 캐릭터들은 기능적으로만 작동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4회부터 이 두 남매의 성장 서사가 길어지면서 드라마가 늘어지기 시작한다.
대사가 설교식으로 되어 있다는 점도 연상호 각본이 각색된 것으로 보이는 또 하나의 대목이다. 연상호는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를 할 때도 철학적인 화두를 던지는 감독이었다. 지금은 오락물도 많이 만드는 대중적인 감독이 되었지만, 예전부터 관객들에게 길게 설명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이 드라마는 복수의 정당성마저 꼬치꼬치 캐묻고 있어서 연상호답지도 않고 몰입에 방해만 될 뿐이었다.
'지옥'이나 '기생수 더 그레이'만 보더라도 연상호는 감정적인 충돌을 선호하는 편이다. '가스인간이 왜 괴물이 되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논쟁을 붙일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스인간을 통해 죄를 지은 사람들이 흔들리면서 서로 목숨을 빼앗고, 국가는 책임을 피하고, 언론은 자극적인 보도를 하면서 작품이 말하는 복수의 의미를 쉽게 이해하도록 만든다. 이 드라마처럼 죄책감이나 양심에 대한 철 지난 질문은 연상호답지 않은 것 같다.
보통 반전이라고 하면 단서를 조금씩 흘리면서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올드보이'나 '식스센스'처럼 반전을 위한 빌드업 장면들이 있어야 두 번째 봤을 때 더 재밌는 법이다. 이 드라마는 관객이 추론할 만한 연결고리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보통 반전이 실패할 때는 단서가 너무 빨리 나오거나 많으면 관객이 눈치채게 되는데, 이 드라마는 단서를 거의 안 줘서 뜬금없는 경우다. 복선으로 나온 장면들 역시 퍼즐을 맞추는 재료가 아니라 거의 통보식으로 전달하고 있다.
연상호는 철학적 질문을 많이 던진 감독이었지만, 전달 방식이 애매하거나 모호하진 않았다. 명제를 설교식으로 해설하려는 것이 아니라 충격적인 시각화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지옥'에서 '인간이 왜 사이비 종교까지 만들어서 의지하는가'에 대해 캐릭터들이 토론하지 않았다. '화살촉'이라는 사이비 종교 집단을 통해 광신도가 되어 가는 사람들을 보여주었다. 결과적으로 관객들이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는 것이다.
가스인간의 존재 원리가 가벼운 면도 있다. 감성적인 부분이 분명히 있고 설득도 되지만, 드라마 안에서는 필연적으로 연결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 반전이 충분히 설계되지 못한 것 같고, 중요한 단서도 준비 없이 툭툭 나오는 느낌이라서 드라마가 주려는 충격이 덜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소재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화이트센터의 비극은 형제복지원 사건이 떠오르는데, 사회적 트라우마를 장르적으로 변형한 경우다. 운석이 떨어진 지점에 유해한 가스가 생겼고, 국가의 은폐로 이뤄진 강제 수용과 비윤리적인 노동이 있었다는 것만 보더라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이야기다. 기본 틀은 분명히 흥미롭지만, 정작 의도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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