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부터 '허수아비'까지…이춘재 사건이 계속 소환되는 이유

1980년대 한국 사회의 공포와 수사 현실이 압축된 비극

사진=ENA '허수아비' 홈페이지
사진=ENA '허수아비' 홈페이지

종영을 앞둔 드라마 '허수아비'가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작품은 대한민국 범죄 역사상 가장 깊은 상흔으로 남은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점에서 제작 초기부터 비상한 주목을 받았다.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경기도 화성군 일대에서 벌어진 이 비극은 무려 10명의 무고한 여성이 희생됐다. 피해자들의 연령대는 13세 중학생 소녀부터 71세 노인까지 광범위했으며 직업이나 생활 반경에 뚜렷한 공통점이 없어 사실상 누구나 범행의 표적이 될 수 있었다. 한적하고 평화롭던 시골 마을의 일상은 매일 밤 귀갓길을 위협하는 정체불명의 살인마로 인해 걷잡을 수 없는 공포로 물들었다.

사건의 서막은 1986년 가을, 귀가하던 70대 할머니가 참혹한 주검으로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두 달여 만에 맞선을 보고 돌아오던 20대 여성과 야근하는 남편을 만나고 오던 여성 등 연이어 4건의 살인이 일어났다.

해를 넘겨서도 범인의 광기는 멈추지 않았다. 피해자를 유린하는 수법은 갈수록 기괴하고 잔혹해졌다. 범인은 피해자가 착용하고 있던 스타킹이나 블라우스로 손발을 결박한 뒤 재갈을 물렸으며, 입에 담기조차 힘든 끔찍한 시신 훼손과 가혹행위까지 서슴지 않았다. 특히 8차 사건에서는 자신의 방에서 잠을 자던 13세 소녀가 희생되는가 하면, 9차 사건에서는 하교하던 여중생이 야산에서 잔혹하게 살해당하며 전 국민의 공분을 샀다.

연이어 터지는 참극 앞에 수사 당국은 연인원 200만 명이 넘는 경찰 병력을 투입했다. 체계적인 과학수사 시스템이나 DNA 감식 기술이 전무했던 1980년대 후반의 척박한 수사 환경 탓에 눈앞에 남겨진 증거들 앞에서도 번번히 범인을 놓치고야 말았다. 늦은 밤거리에 나서는 것조차 두려워했던 당시 지역 주민들의 트라우마와 무고하게 용의자로 몰렸던 이들의 고통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워지지 않는 아픈 상흔으로 남아있다.

영원히 묻힐 것만 같았던 이 사건의 진실은 지난 2019년, 무려 33년 만에 백일하에 드러났다. 처제를 살해한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던 이춘재의 DNA가 과거 범죄 현장의 핵심 증거물과 일치하였고, 마침내 그의 입에서 모든 범행의 자백이 나왔다. 안타깝게도 이미 모든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이 사건들로 다시 법의 심판대에 세울 수는 없었다. 대신에 가석방을 차단하여 사회에서 영구 격리하는 방안으로 죗값을 치르고 있다.

왜 이춘재 사건은 계속 드라마화가 되고 있을까. 한국에는 그동안 강력 범죄가 많았다. 지존파, 유영철, 강호순, 정남규, 조두순 등등 많았지만, 이춘새 사건만큼 반복적으로 콘텐츠로 소환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을 떠올려 보자. 관객들이 기억하는 것은 이춘재가 아니라 범인을 끝내 잡지 못한 형사들의 좌절이었다. 미스터리 장르의 가장 강력한 동력을 달고 있는 셈이다. 이춘재 사건은 무려 30년 가까이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그 시간 동안 사람들은 범인의 정체와 다음 희생자에 대한 우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안전한지 묻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이춘재 사건은 한국 사회 전체가 공유한 거대한 미스터리가 되었다.

30년 동안 미제 사건으로 남은 탓인지, 지난 2019년에 범인이 잡혔는데도 여전히 이춘재와 관련한 콘텐츠가 소비되고 있다. 미제 사건은 자연스럽게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되는 묘한 힘이 있다. 범인을 추적하는 것보다 더 감정적으로 영향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춘재 사건은 사실 우리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지금도 그의 사건이 회자되는 이유는 1980년대 한국의 모습이 압축됐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전인 군사정권에 과학수사도 사실상 없는 상태다. CCTV도 없고 DNA 감식이라는 것도 없어서 '살인의 추억'에서 보았듯이 사람을 잡아다가 취조하는 방식이 중심이었다. 자연스럽게 강압 수사와 조작 수사, 허위 자백 등의 문제로 이어진다.

당시 화성은 논밭이 이어진 시골이었다. 가로등도 부족했으니, 밤만 되면 여성들에게는 혼자 걷는 것 자체가 공포가 될 수밖에 없다. 공동체를 불안하게 만든 이런 시대가 콘텐츠로 소비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당시에는 누가 실종돼도 어디서 어떻게 사라졌는지 알 방법이 거의 없었을 테니까.

이 사건은 단순히 한 미친 살인범의 이야기가 아니다. 80년대 한국 사회, 권위주의 수사 문화, 농촌 공동체의 불안, 과학 수사의 발전 등이 전부 압축된 사건이었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도 계속 분석되고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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