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와바라 시세이의 사진을 보면 '기록' 그 이상의 느낌이다. 그의 다큐 '사진의 얼굴'을 감상하기 전 우연히 사진전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사진 속 인물들의 표정과 그 주변을 맴도는 공기마저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에는 영화 스틸처럼 보였다가, '그 순간에 전후로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하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부산의 구릉지 판잣집을 보면, 집들이 산비탈을 타고 끝없이 증식하는 듯한 화면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시절 가난했던 사람들이 어떻게든 도시의 틈에 끼어서 버텨냈을 것이다. 이러한 형상은 청계천변 무허가 판잣집 사진에서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이 사진들은 꽤 위험해 보인다.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빈민촌을 풍경화처럼 만들었으니 말이다. 묘하게도 그 안에서 사람이 실제로 살고 있다는 감각은 어느새 사라져 버린다.
한복 차림의 여성이 장을 보고 돌아가는 길도 묘하다. 품에 안은 돼지, 뒤에서 따라오는 아이들, 좁은 골목이 한 화면 안에 들어와 있다. 여성의 표정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고단함, 무심함, 낯선 카메라를 의식한 경계심일 수도 있다. 덕분에 좋은 사진이라는 게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됐다. 단순히 가난한 여성의 초상이 아니라 계속 응시하면서 해석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이다.
또 하나 눈길이 가는 사진은 4·19 5주년 추모 침묵시위 현장이었다. 대학생들이 가랑비를 맞으며 행진하는데, 평범한 군중으로 보이지 않는다. 영웅처럼 포즈를 취한 것도 아니고, 감정이 과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그들 면면이 단단해 보인다. 이 사진 한 장만으로도 거대한 구호는 필요하지 않았다.
구와바라 시세이는 특정한 시기만 훑고 간 사람이 아니었다. 동두천, 베트남 파병, 학생 시위, 그리고 평양까지 자신의 인생을 걸고 함께했다. 지금까지 해외를 다니며 수백만 장의 사진을 찍었다는 그는 유독 한국에서 많은 사진을 찍었다. 덕분에 그가 남긴 사진들은 한국의 낯선 풍경에만 그치지 않고, 변화하고 갈등하고 버티는 한국 사회의 전반을 보여주고 있다. 베트남 파병을 가는 군인들이 부모와 함께 도시락을 먹는 사진에서 확신할 수 있었다. 그의 사진 속의 인물들은 우연히 스쳐 지나간 것이 아니라 분명히 기억해야 할 '이름'이 있으며, 값진 '삶'이 있었다는 것. 그의 사진들을 보면서 인생의 숭고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위대한 작가는 일벌레라서 종종 외로운 삶을 산다. 최화자 씨는 구와바라 시세이가 한국에 왔을 때 통역을 맡은 인연으로 결혼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후회했다. 사진을 찍느라 집에는 거의 들어오지 않는 남편이 미워서 말도 하지 않고 한국으로 떠나기도 했다. 지금은 구와바라 시세이가 어디든 갈 수 있게 카메라를 챙겨주는 모습은 낭만적이면서도, 그 긴 세월을 압축하는 장면으로 보였다. 화자 씨는 막상 한국으로 왔지만, 남편이 홀로 작업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버티고 버틴 삶이 지금의 거장 구와바라 시세이를 만든 것이다.


지금도 확대경으로 일일이 사진을 들여다보는 구와바라 시세이의 열정이 기억에 남는다. 현상 하나하나를 디테일하게 다루는 모습은 진짜 '사진'과 결혼한 사람처럼 보인다. 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작업 과정에서 보이는 옅은 미소에서도 사진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오랜 시간 고찰하게 된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사진작가'에서 '작가'가 왜 들어가는지 알 수 있었다. 구와바라 시세이는 단순히 '현장'을 소비하지 않는다. 현장에서 일어난 사건을 제대로 담아낸 덕분에 시간이 지나도 끝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사진 한 장으로 이토록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그는 여전히 그런 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행복해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지금도 그의 사진을 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외면하는지 묻게 된다.
다큐멘터리 '사진의 얼굴'은 내달 2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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