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후기] '인 더 그레이' 완벽주의 프로들이 주는 색다른 쾌감

배신도 실책도 없다… 감정 노동 없이 감상하는 '진짜 프로'들의 업무 수행

사진=(주)키노라이츠 제공
사진=(주)키노라이츠 제공

'인 더 그레이'는 VIP 전담 변호사 레이첼(에이사 곤잘레스)이 전직 특수요원 시드(헨리 카빌), 브롱코(제이크 질렌할)와 팀을 이루고, 10억 달러를 떼먹은 범죄자 살라사르로부터 돈을 되찾아오는 과정을 그렸다. 보통 첩보물은 계획이 망가지면서 긴장감을 만드는데, 이 영화는 거의 반대로 가고 있다. 배신자가 나오거나, 장비가 갑자기 망가지거나, 뜻밖의 감정이 개입되면서 규칙을 어기는 일이 절대 벌어지지 않는다. 이 사람들은 애초 그런 변수까지 철저히 통제한 것처럼 보인다.

영화가 1시간 동안 계획을 갈무리하는 것을 보면서 '미션 임파서블' TV 시리즈가 떠올랐다. 국내에서 '제5전선'으로 방영됐던 이 시리즈는 여러 전문가의 계획이 정확히 맞물리는 재미가 있었다. 한 명이 현장에 투입되는 동안에 다른 한 명이 탈출로를 만드는 등 미리 계획했던 작전들이 마지막 순간에 하나의 결과로 모이는 방식이 쾌감이 있었다. '인 더 그레이'의 레이첼이 설계자이자 협상가라면, 시드와 브롱코는 실행 장치인 셈이다.

레이첼이 변호사라는 점이 재밌다. 이 영화의 액션은 애초부터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본래 목표는 살라사르를 멋지게 처단하는 것이 아니라, 10억 달러를 완전히 회수하는 것이다. 주인공들은 정의의 사도라기보다 최고급 채권 추심 팀에 가깝다. 이들이 실행에 옮기는 과정은 복수심 같은 감정에서 비롯되지 않고 엄밀히 따지면 계좌 정산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레이첼뿐만 아니라 시드와 브롱코 모두 얼굴에 딱히 감정을 노출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런 점이 단점이 되기도 한다. 계획 설명에만 1시간 가깝게 할애하는 동안에 그 어떠한 갈등이 없다. 팀 내부의 균열도 없고 작전의 빈틈도 없어서 주인공들 사이의 신뢰도 흔들리지 않는다. 프로다운 모습에 감탄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흔히 첩보물에서 봤던 긴장감은 기대할 수 없다.

이 영화는 퍼즐을 푸는 게 아니라 완성된 퍼즐을 차근차근 풀어주는 것에 가깝다. 하나같이 계획을 깔끔하게 해내고 있어서 관객들이 빈틈이나 단서를 찾아낼 일도 없다. 생각지 못한 변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라서 서스펜스의 힘도 거의 없다. 감독은 아마 그 빈틈없는 프로들의 매력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이런 짐작은 가능하다. 주인공들은 이미 치명적인 실수로 여러 차례 시련을 겪었던 사람들이라서 서로를 이제 완전히 신뢰한 프로들인 것이다.

1시간 계획을 갈무리하고, 남은 30분 동안 보여준 액션에서도 딱히 혼란스러운 점이 없다. 헬기가 등장하고, 박격포와 함께 대폭발도 일어나지만, 카메라는 크게 흔들리지 않고, 컷도 요란하지 않다. 그저 관객들은 이제 숙련된 팀의 실력을 감상하면 된다. 마치 감독은 이들이 프로니까 소란스러울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사진=(주)키노라이츠 제공

서사적으로 밋밋하다는 게 단점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배신과 희생 등을 억지로 끼워 넣지 않았다는 점에서 솔직한 영화이기도 하다. 갈등은 없어서 드라마적 요소가 보이지 않지만, 감정 소모가 없다는 점이 좋기도 하다. 레이첼의 "시드와 브롱코는 목숨을 맡겨도 되는 사람들이다"라는 대사처럼 주인공들끼리 이미 신뢰는 쌓은 덕분에, 이들이 그 전제하에 얼마나 정교하게 움직이는지 보여주는 것이니까.

1시간 작전 회의하는 동안에 하품이 나와도 괜찮다. 오히려 정상이다. 지루한 것 같다는 불만과 깔끔한 영화라는 평가는 이 영화에서 모순적이지 않다. 프로들이 자기 분야에서 정확히 수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감정 노동이 싫은 날에 보면 좋을 것 같다. 마지막까지 주인공들이 프로처럼 순서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 이 영화만의 멋이다.

영화 '인 더 그레이'는 내달 2일 개봉 예정이며, 쿠키 영상은 없다.

×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댓글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