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진 프리뷰] 숏드라마가 극장에서…이준익 감독이 새로 차려낸 '아버지의 집밥'

40년 만에 든 앞치마, 당연했던 밥상 뒤에 숨겨진 '돌봄'의 가치를 묻다

사진=(주)레진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주)레진엔터테인먼트 제공

평생 아내가 차려주는 집밥을 당연하게 여겼던 아버지가 난생처음 부엌에 들어선다. 서툰 칼질과 뜨거운 냄비에 데이는 시행착오부터 가족의 한 끼에 담긴 정성을 깨닫는 순간까지, '밥'이라는 가장 익숙한 소재를 통해 가족의 관계와 돌봄의 의미를 되짚는 작품이 찾아온다. 이준익 감독의 숏드라마 '아버지의 집밥'이다.

'아버지의 집밥'은 40년 동안 삼시세끼 집밥만 찾던 아버지 하응(정진영)이 요리를 할 수 없게 된 아내 순애(이정은)를 대신해 직접 가족의 밥상을 차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여기에 변요한이 아들 명복 역으로 합류해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 사이에 쌓여 있던 감정까지 함께 풀어낸다. 모바일을 중심으로 소비돼 온 숏드라마가 극장에서 공개되는 첫 사례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공개된 예고편은 하응의 캐릭터를 통해 이야기의 출발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명복 엄마", "배고파", "밥 줘"를 말하며 아내에게 식사를 요구하던 하응에게 어느 날 큰 변화가 찾아온다. 평생 부엌과 거리를 두고 살아온 그에게 아내 순애가 더 이상 요리를 할 수 없다고 선언한 것. 순애가 그동안 참아왔던 감정을 쏟아낸 뒤 집을 떠나면서, 하응이 당연하게 누려왔던 일상도 한순간에 흔들린다.

결국 하응은 직접 앞치마를 두르지만, 마음만 앞설 뿐 현실은 녹록지 않다. 냄비 손잡이에 데이고 칼질조차 서툰 그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 과정에서 '집밥'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던 노동의 크기가 조금씩 드러난다.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고 미역국과 곰탕, 짜장면 등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하응이 처음으로 아내의 일상을 체험하는 시간이 된다.

특히 순애가 하응의 음식을 냉정하게 평가하며 "벌점 10점이면 이혼"을 선언하는 설정은 작품의 유쾌한 톤을 보여준다. 그동안 아내의 입맛과 노동을 고려하지 않았던 하응이 이제는 자신의 음식이 상대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밥을 차린다는 평범한 일상이 사실은 상대방의 취향과 건강, 하루의 상태까지 헤아리는 돌봄이라는 사실을 하응이 뒤늦게 배워가는 것이다.

순애가 엄마의 밥을 당연하게 여겼던 자식들에게 "난 누군가의 밥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장면도 의미심장하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유지돼 온 가족의 식탁을 다시 바라보면서, 그동안 가족 구성원들이 외면했던 서운함과 상처까지 상기시킨다.

하응의 어설픈 요리 도전과 손녀의 "할아버지 최고!"라는 반응, 조금씩 달라지는 가족의 식사 풍경은 작품에 따뜻한 웃음을 더한다. 완벽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밥상을 차리는 마음을 알게 되는 것이 하응의 진짜 변화인 셈이다.

"밥을 차려준 이에게 감사해야 한다"라는 순애의 말은 작품의 핵심을 보여준다. 매일 반복되는 집밥은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안에 담긴 노동과 정성을 잊어버리기 쉽다. '아버지의 집밥'은 그 익숙함을 유쾌한 톤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진=(주)레진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영화는 고리타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이준익 감독이 처음 선보이는 숏드라마다. 제3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는 '플랫폼 기획전: 숏폼 시네마' 부문에 초청돼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됐다. BIFAN 측은 작품에 대해 "모양이 바뀌었을 뿐 이준익의 영화가 바뀐 것은 아니다"라고 평가하며, 가부장적 남편과 평생 집밥을 만들어온 아내의 관계를 통해 너무나 당연해서 소중한지 몰랐던 것을 돌아보는 작품으로 소개했다.

고리타 작가의 원작 웹툰은 이미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작품이다. 레진코믹스에서 연재를 시작한 뒤 카카오페이지와 네이버 시리즈 등으로 서비스됐으며, 현재 네이버 시리즈에서는 평점 9.4점을 기록하고 있다. 레진코믹스에서도 완결작으로 서비스되며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가부장제와 돌봄 노동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밥'이라는 친숙한 소재와 유머로 풀어낸 '아버지의 집밥'은 원작 웹툰이 보여준 따뜻한 가족극의 정서를 바탕으로 이준익 감독 특유의 인간미를 더할 것이다. 숏드라마라는 새로운 형식 안에서 얼마나 깊은 가족의 이야기를 만들어낼지 관심이 모인다.

영화 '아버지의 집밥'은 내달 9일 롯데시네마에서 단독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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