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유명한 야구 선수 중구(류승룡)와 여배우 남미(하지원)가 세기의 결혼식을 올린 뒤에 큰 불행이 닥친다. 아이돌 출신의 여가수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중구에게 딸이 있다는 유언장을 남긴 것이다. 중구는 어쩔 수 없이 딸 동주(김시아)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었는데, 어느 날 동주가 친구를 살해한 용의자가 된다. 이제 중구는 자신을 불행에 빠뜨린 동주를 위해 증거를 찾아다녀야 하고, 배우 이미지가 추락한 남미는 둘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는다.
여기까지 들어보면 영화는 꽤 사건이 많아 보인다. 막장 가족극과 미스터리 스릴러를 섞어서 관객이 계속 다음 단서를 따라가게 만드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이 영화는 관객이 기대하는 사건의 재료들을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매번 인물들의 비장한 표정과 그들의 상처를 강조하는 데 지나치게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있다. 관객들은 동주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중구는 어떻게 진실에 접근하여 부성애를 발휘할 것인지, 배후에는 혹시 다른 인물은 없는지를 궁금해하는데, 매 장면마다 비장한 음악과 함께 배우들의 처절한 연기를 계속 강조하고 있다.
특히 동주의 사건은 이 영화의 중심 축으로 보이는데도, 필요한 정보를 말하지 않고 있다. 동주를 포함해서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필요한 말을 하지 않고 화를 내며 회피만 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영화가 점점 인위적으로 보이고 피곤해진다. 관객들은 늘 배우들이 감정적일 수 있다고 믿지만, 영화가 그 감정을 핑계로 인과관계를 포기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캐릭터들의 감정을 특별히 애써 강조할 필요가 있었는가. 애초부터 영화는 치밀하고 섬세한 스릴러 장르에 관심이 없었다. 중구도 그렇고 동주도 그렇고 이미 사건의 진실이나 증거에 접근하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고 있다. 영화가 그것을 납득시킬 만한 상황을 보여주지 않으면 당연히 관객들은 영화의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이 아니라 의아한 것이다.




캐릭터들의 처지도 그다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남미는 남편의 과거와 혼외자 논란 때문에 대중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수는 있어도, '나는 자연인이다'와 같은 프로의 리포터로 전락할 일은 없어 보인다. 이보다 훨씬 최악의 연예인들도 몇 년 정도 숨죽이고 있다가 여론이 잠잠해질 때 다시 스크린 앞에 나타나지 않는가. 그 사건으로 성격이 괴팍해지는 것이랑 동주에게 냉정해지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사건이 벌어진 이후에 사회적 낙인, 부부간 신뢰 붕괴, 커리어 상실 등에 대한 좀 더 세밀한 묘사가 있어야 하는데, '나락 간 여배우'만 던져 놓으니 캐릭터가 기능적이지도 못하다.
중구도 마찬가지다. 아이돌 출신의 여가수가 딸을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면 사실상 사회에서 퇴출 대상이다. 이런 남자가 동주를 위해 희생하려는 순간부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선택이 자신의 명예 회복과 동주를 보호하는 것 사이에서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명료하지가 않았다. 이런 게 없으니 관객들이 드는 현실적인 반문에 반박을 못하는 모양새가 됐다. 윤리적 딜레마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을 그저 묵묵히 희생하는 남성 주인공의 비장함으로 처리하는 건 그다지 매력적이지가 않다.
영화는 제목 '비광'에 비유하며 처음부터 비장미를 드러내지만, 비광이라는 말이 가진 어둠과 그림자의 이미지를 잘못 이해한 것 같다. 어두운 화면, 무거운 음악, 고통스러운 모습이 많다고 깊어지는 건 아니니까. 진짜 비장미가 있으려면 인물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다음 선택이 어떻게 망가지고 회복되는지 명확히 보여줘야 한다. 사건들은 다 과잉적인데 그 인과관계는 빈약하고 감동의 근거도 부족해 보인다.
영화 '비광'은 내달 2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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