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6일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국제음악영화경쟁 대상에 오스트리아 영화 '그 도시에서 가장 외로운 남자', 국제경쟁 대상에 이라크 영화 '길가메시의 꿈'이 각각 선정됐다.
국제음악영화경쟁 대상작인 '그 도시에서 가장 외로운 남자'는 티차 코비와 라이너 프리멜이 공동 연출한 오스트리아 영화다. 영화제 심사위원단은 꿈과 희망, 현대성을 품고 사라져 가는 세계를 끝까지 붙들려는 한 남자의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쓸쓸하면서도 따뜻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그려낸 점을 높이 평가했다.
영화의 주인공은 오스트리아 빈의 블루스 음악가 알 쿡이다. 아파트와 지하 스튜디오에서 살아가던 그는 부동산 개발로 집이 철거될 위기에 놓이면서 자신의 삶과 기억, 음악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실제 블루스 음악가 알 쿡이 극 중에서 자신의 허구화된 모습을 연기하는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이미 제7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독일 아트하우스 영화관협회 길드 영화상 특별언급(Guild Film Prize Special Mention)을 받았다. 이후 제39회 볼차노영화제에서는 작품상에 해당하는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볼차노영화제 심사위원단은 영화가 주인공을 깊은 공감과 비감상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보편적인 의미를 지닌 인물의 초상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해외 영화계에서도 이 작품에 대한 높은 평가가 이어진 바 있다. 영화 전문지 시네유로파(Cineuropa)는 오스트리아 블루스 음악가 알 쿡의 세계를 그리면서 유머와 멜랑콜리를 함께 담아냈다고 평가했고, The Film Verdict는 알 쿡의 재치 있는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자 다큐멘터리의 영역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확장한 영화라고 평했다.
블루스 음악과 노년, 도시의 소멸, 기억의 상실을 하나의 정서로 묶어낸 방식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알 쿡이라는 실제 음악가의 삶을 통해 음악 자체를 영화의 중요한 서사적 요소로 끌어들였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티차 코비와 라이너 프리멜은 1996년부터 함께 작업해온 영화인으로, 2002년 독립 제작사 벤토 필름을 설립했다. 두 사람의 첫 장편영화 '라 피벨리나'는 칸영화제 감독주간에서 유럽 시네마스 레이블을 받았으며, '미스터 우니베르소'는 로카르노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연맹(FIPRESCI)상을 받는 등 국제영화제에서 꾸준히 주목받아왔다.

국제경쟁 대상은 모하메드 알 다라지 감독의 '길가메시의 꿈'이 차지했다. 제천영화제에서는 아시아 프리미어로 공개됐으며, 심사위원 전원의 지지를 받아 대상으로 선정됐다. 심사위원단은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삶을 생각하고,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작품이라는 점을 수상 이유로 꼽았다.
영화는 2019년 바그다드를 배경으로 한다. 당뇨를 앓는 아홉 살 소년 춤춤은 티그리스강에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화 속 저승인 이르칼라로 통하는 문이 있다고 믿는다. 전쟁으로 잃어버린 부모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 길가메시의 신화를 붙잡고 있는 것이다. 그 와중에 친구 무디가 민병대와 폭력의 세계에 휘말리면서 춤춤의 신화적 세계와 바그다드의 냉혹한 현실이 충돌한다.
'길가메시의 꿈'은 이미 제78회 로카르노영화제 피아차 그란데와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센터피스에 초청됐다. 2026년에는 튀니지 국제아동청소년영화제에서 장편 극영화 부문 골든 펄을 수상했다.
시네유로파(Cineuropa)는 이 영화가 어린 관객을 주요 대상으로 삼으면서 바그다드의 거리와 혼란을 아이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드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핸드헬드 촬영과 드론 촬영을 결합한 영상은 새롭거나 혁신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궁극적으로는 진정성과 상징성, 감정적 힘을 가진 영화라고 평했다.
연출을 맡은 모하메드 알 다라지는 이라크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바그다드 출신인 그는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영화 교육을 받은 뒤 이라크로 돌아가 첫 장편 '아흘람'을 만들었다. 이 작품은 125개 이상의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며 20여 개 이상의 상을 받았고, 이라크의 아카데미상 출품작으로 선정됐다. 이후 '바빌론의 아들'은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국제앰네스티 영화상과 평화상을 받으며 그의 국제적 명성을 확고히 했다.
알 다라지의 영화는 이라크의 전쟁과 폭력,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억과 상처를 꾸준히 다뤄왔다는 점에서 '길가메시의 꿈'은 그의 영화 세계가 이어진 작품으로 볼 수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영웅 서사인 길가메시를 현대 바그다드의 어린이에게 연결한 것도 이러한 작업의 연장선이다.

한국 장편 영화음악가 경쟁 부문인 '뮤직인사이트' 대상은 '하이파이브'의 음악을 맡은 김준석 음악감독에게 돌아갔다. 비트와 리듬이 영화를 이끄는 이 영화는 각 인물의 개성과 매력을 살려낸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신인 영화음악가 경쟁 부문인 '뉴탤런트' 쇼박스 대상은 유소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공순이'의 조은 음악감독이 수상했다. 이야기와 인물에 밀착해 감정의 균형을 유지한 음악적 완성도가 높이 평가됐다.
6일간 51개국 189편의 영화를 선보인 제22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두 작품을 대상으로 선정하며 막을 내렸다. 제천에서의 대상 수상은 해외 영화제의 흐름 속에서 주목받아온 작품을 국내 관객에게 소개했다는 의미에서도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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