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기사에는 넷플릭스 드라마 '맨 끝줄 소년'의 주요 전개와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과연 허문오(최민식)를 속일 정도로 잘 쓴 소설이 이 세상에 존재할까. 물론 매혹적인 글이라면 누구나 속을 수도 있다. 문제는 이 드라마처럼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릴 정도로 속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허문오는 단순한 독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부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읽으면서 속았다고 생각했다. 범인과 반전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심지어 작가나 평론가들도 속았다고 할 정도였다. 다행히 이건 어디까지나 소설 안에서 속은 것이다. 이강(최현욱)이 말하는 건 소설이 아니라 실제 사건이었다. 이렇게 되면 누구나 검증을 하는 단계로 들어갈 것이며, 독자가 아니라 탐정이 되어 버린다.
드라마 속에서 허문오는 언제든지 검증을 마칠 수 있었다. 김세윤(이진우)과 마주쳤을 때도 집안 문제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어볼 수 있었고, 이강에 대해서도 얼마나 아는지 자세히 물어볼 수도 있었다. 몇 마디면 끝나는 것을 허문오의 열등감을 핑계로 과감하게 배제해 버렸고, 관객들은 이미 이것이 연속극 수준의 뻔한 이야기라는 것을 눈치채게 만든 장면에 불과했다.
너무나 뻔한 이야기지만, 실제로 사기꾼들은 검증이 가능한 거짓말을 절대 하지 않는다. 투자, 음모론, 종교처럼 확인이 어려운 영역을 이용한다. 그런 면에서 이강의 이야기는 검증이 너무 쉽다. 친구 김세윤부터 시작해서 그의 부모와 친구들로부터 언제든지 확인이 가능하다. 이것 역시 드라마에서는 허문오의 열등감과 시기심이 낳은 참극이라는 것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원작에서는 거짓말에 큰 관심이 없었다. '인 더 하우스'의 클로드(어니스트 움하우어)는 대단한 음모를 만들지도 않았다. 조금씩 사람들이 궁금해할 욕망을 건드리며 매혹적인 글을 쓰고 있었다. 친구 엄마에 대한 욕망을 시작으로 디테일하게 써 내려가는 글 때문에 교수가 딜레마를 겪은 것이다. 덕분에 '진실'에 매달리지 않아도 '다음 편에 계속'에 더 빠져들 수 있었다.
이강이 하고 있는 것은 매혹적인 글쓰기가 아니라 사건을 얘기하고 주장하는 것이다. 불륜과 표절, 살인과 협박, USB 증거 은폐 등 그 내용이 흔한 드라마의 소재 같다. 이런 것들이 한꺼번에 나오면 당연히 경험 많은 작가라고 한다면 의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면에서 허문오는 상스럽다고 욕할 것이 아니라 검증 단계에 들어가야 한다.
추리 소설을 많이 읽은 독자들은 패턴을 학습한다. 누군가가 이상하게 친절해 보인다든가 계획이 너무 완벽해 보인다든가 증거가 생각보다 쉽고 우연히 발견된다고 하면 작가가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작가였고 문학 교수까지 하고 있는 허문오가 아무 의심 없이 믿는다면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강의 주장을 들어보면 진짜 거짓말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사실 무서운 거짓말은 진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섞는 것이다. 이강에게 그만큼 거대한 사건이 필요했는지 생각해 보면 회의적이다. 연속극의 결말처럼 달리다 보니 진실 속에 섞여 있어야 할 거짓말이 너무 투명해졌다. 결정적인 부분만 살짝 조작하는 영리함은 위험하지만,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게다가 글을 오랫동안 쓰는 작가를 상대로 속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원작의 매혹적인 글쓰기는 사라지고, 열등감으로 이성이 마비된 사람이 나타났다. 드라마는 어느 순간부터 문장도 나오지 않고, 결말이 뻔히 보이는 구조를 드러내고 말았다. 허문오처럼 누군가를 감쪽같이 속일 수 있는 소설이 나올 수도 있다. 대신에 그 누군가의 인생을 망칠 정도로 속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 정도가 되려면 욕망이 개입되어야 하는데, 그 욕망을 열등감과 질투로 설명해 버렸다. 원작의 그 창작 욕망이 상실되어 버려서 허문오 캐릭터의 행동 동기가 설득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원작의 의도는 명백히 열등감이나 시기심이 아니라 이야기에 중독되는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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