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레이] '세계의 주인' 이 영화가 보여준 '회복탄력성'의 얼굴

'세계의 주인'이 보여준 조용한 연대의 힘

사진=㈜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사진=㈜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성범죄가 피해자에게 가장 먼저 빼앗아가는 것은 무엇일까. 신체보다는 삶에 대한 통제감을 송두리째 빼앗아가는 것이 아닐까. 악몽과 공황장애, 대인기피, 분노와 같은 감정들로 둘러싸여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주관적인 믿음을 빼앗기는 것이다. 영화 '세계의 주인'은 반대로 묻고 있다.

'피해자가 왜 통제감을 잃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피해자는 왜 늘 아파해야 하는가?'

세상에는 불편한 감정을 내색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는 이런 감정을 핵심으로 하여 큰 울림을 준다.

이주인(서수빈)은 누가 봐도 활발한 고등학생이다. 남녀 가리지 않고 몸을 부대끼며 허물없이 지낸다. 어머니 강태선(장혜진)에게는 친구처럼 농담도 하고, 동생 이해인(이재희)과는 친형 부럽지 않게 장난을 친다. 그 와중에 같은 반 친구 장수호(김정식)가 성범죄자의 출소를 막자는 취지로 서명 운동을 시작하면서 문제가 시작된다.

보통 성범죄자를 비판하는 글은 피해자에 대한 동정부터 시작한다. 피해자가 평생 상처를 안고 산다든가 인생이 망가져서 회복되기 어려울 것라는 등등, 사실상 피해자를 규정하는 내용이다. 물론 성범죄자를 막자는 사람들은 다시는 이런 피해가 없어야 한다는 취지로 설명하지만, 사실 피해자에게 특정한 역할을 강요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심리학자 조지 A. 보나노는 9.11 테러와 폭행, 사별 등을 경험한 사람들을 장기간 연구하여 뜻밖에 결과를 알아냈다. 일부는 여전히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었지만, 상당수가 학교나 직장, 가정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유지했던 것이다. 보통 이런 사람들에게 '회복탄력성'이 있다고 말한다.

보나노가 강조한 것은 대중의 오해였다. 사람들은 흔히 아프면 울어야 하고, 충격을 받으면 무너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 연구에서는 주인이처럼 내색하지 않고 가정과 학교에서 꿋꿋이 버텨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주인이가 서명 운동에 반발하는 이유는 '피해자는 평생 망가져야 한다'라는 사회적 이미지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사진=㈜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주인이는 사실 아무렇지도 않은 게 아니다. 세차장에서 엄마에게 울부짖는 장면만 봐도 알 수 있다. 두려움은 그대로 존재하지만, 24시간 얼굴에 담아 내지 않을 뿐이다. 상처가 아문 것이 아니라 상처를 안고, 친구들과 몸을 부대끼며 장난도 치고 남자친구와도 키스도 하는 것이다. 그 차이는 굉장히 중요하다.

주인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너는 어떻게 그렇게 태연할 수 있어?'라는 메모를 보내기도 하고, 얼굴 보는 것이 불편해서 마주하기도 힘들다. 그러다 이 영화는 결말에서 생각지 못한 큰 울림을 준다. 주인이처럼 내색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화답을 보여준 것이다. 주인이가 특별한 능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본래 모습으로 돌아와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갔을 뿐인데, 그 모습에 나도 무너지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 것이다.

그런 면에서 '주인의 세계'의 주인은 여전히 주인이다. 주인이가 살아가는 세계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영화가 강조하는 것이다. 가족, 특히 남동생, 친구들이 내색하지 않고 지켜주는 사람들이 된 것이리라. 억지로 고치려 들지 않고, 조언하지도 않고, 그저 존재를 인정해주는 사람들. 주인이가 살아가는 세계처럼 이 세상이 아직 덜 잔인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다시 꺼내볼 가치가 있다.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댓글 작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