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레이] '퍼펙트 블루' 90년대 아이돌 스릴러가 예언한 SNS 시대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시작된 정체성 붕괴의 공포

사진=(주)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진=(주)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 제공

故 곤 사토시 감독의 '퍼펙트 블루'는 지금 시대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이 애니메이션이 나왔던 1997년 일본은 버블경제 이후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지금보다 훨씬 심하게 상품화된 여성 아이돌은 순수하고 청순한 '환상'의 이미지를 강요받아야 했다. 당시 국내 정서와도 부합되는 면이 있어 꽤 충격적인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워낙 폭력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가 있다 보니 단순히 광적인 스토커가 나오는 미스터리 스릴러로 봤을 수도 있다. 지금 보면 우리 모두가 여주인공 '마미'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당시에는 연예인만 대중의 시선을 받았지만, 지금은 유튜버, 스트리머, 인플루언서, 심지어 일반인들도 전부 자기 이미지를 관리하며 살고 있다.

그런 면에서 미마가 인터넷을 처음 접하는 장면은 꽤 흥미롭다. 누군가 '미마의 방'이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그녀의 실상을 자세히 기록하는 장면은 지금으로 치면 SNS 시대로 해석될 수 있다. 누군가 미마의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며 설명해 주는 '홈페이지'는 이후 그녀의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오는 중요한 메타포가 된다.

미마가 '미마의 방' 홈페이지를 보고 충격을 받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무엇이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장면은 지금 봐도 섬뜩하다. 그 홈페이지가 미마이라는 인간을 규정하는 지경까지 가면서 작품 자체가 관객에게 '공황'을 전달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오히려 미마보다 더 심한 경우도 많을 것이다. 일반인들을 향한 스토킹도 사회 문제로 번지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감독이 아이돌 산업에 비유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마는 스스로 배우가 되겠다고 나섰지만 선택권이 별로 없다. 소속사, 방송국, 작가, 감독 등 모두가 미마의 인생에 끼어들려 한다. 미마가 분명 주인공인데 자신의 인생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연예인을 상품으로 소비하는 구조를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한 인간의 정체성을 묻는 핵심적인 장치인 셈이다.

미마 주변인들이 그녀를 멋대로 상상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누군가는 미마를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하려고 하고, 누군가는 미마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 순수하고 청순하기만 한 환상 속의 미마만을 생각한다. 주변인들 모두가 실제 인간 미마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이 작품이 나왔던 당시에는 광적인 스토커만가 나오는 공포물로 보였겠지만, 지금은 다른 것이 보인다. 누구나 자신의 이미지를 올리며 SNS를 운영하는 시대에 비추어 보면, 대중은 그 이미지를 진짜로 믿는 경향이 있다. 인간 미마가 아니라 순수하고 청순해 보이기만 하는 미마의 이미지만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점점 실제 자신과 온라인 자아 사이에서 괴리를 느낀다.

'퍼펙트 블루'는 아이돌 산업이라는 극단적인 비유를 들어 정체성에 대한 철학을 얘기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SNS 속 가짜 자아에 시달리는 현대인들 모두 이 작품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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