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대홍수'는 인공지능이 가상 시뮬레이션을 통해 모성애를 학습한다는 흥미로운 전제를 내세우지만, 반복적인 전개와 서스펜스의 빈곤 탓에 결국 진부한 인상만 남긴다. 현실의 AI 기술이 놀라운 속도로 진화하는 현시점에서 영화가 제시하는 학습 방식과 세계관은 지나치게 평면적이며, 지적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차별화된 관점도 보여주지 못한다.
소행성 충돌로 인한 대재앙 속에서 아들을 구출하려는 안나(김다미)의 사투가 실은 인류 재건 프로젝트를 위해 설계된 데이터 축적 과정이었다. 영화는 모성애를 반복 학습으로 ‘이해’하려는 AI의 시선을 경유해 감정의 본질을 집요하게 묻고자 한다.
문제는 모성애의 척도로 삼는 장애물의 설정이 애매하다는 것이다. 심리적 갈등과 윤리적 딜레마가 핵심으로 작동하고는 있으나, 단선적인 인상이 강하고 AI가 제안하는 학습 모델로도 효율적인지 의문이 남는다. 모성애의 증명을 물리적 장애물의 돌파에 집중시키고 있어서 다소 일차원적으로 보인다. 모성애라는 감정은 액션이나 희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건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위험에 처한 자식을 위해 몸을 던진다는 학습만 한다면 이건 사실 영웅 서사에 가깝다.
AI의 반복 구조는 타임 루프 형식을 빌려 모성애 학습의 변화를 꾀하려고 하지만, 같은 장르의 선례에도 따르지 못해 투박한 편이다. 실제로 오늘날 생성형 AI는 특정 감정을 하나의 사례로 배우지 않는다. 엄청난 양의 언어와 행동, 선택과 맥락을 통해 패턴을 추론한다. 영화 속 AI가 수백 번 같은 상황을 반복하면서 모성애를 배운다는 설정은 1980년대 SF에 가까운 발상이다.
물론 영화는 AI와 같은 기술적인 측면보다 '모성애'에 더 관심이 있다. AI 학습과 시뮬레이션은 그저 장치일 뿐이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감정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런 질문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나왔지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대신에 이러한 질문을 받쳐줄 서사가 부족하고 정교하지 못하면 관객은 철학적인 질문보다 설정의 허점을 먼저 보게 된다.
결국 영화는 '모성애를 학습하는 AI'라는 매력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이를 뒷받침할 상상력과 설계의 밀도가 부족하여 긴장감의 밀도가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다. 좋은 질문을 던졌지만, 그 질문을 증명하는 과정이 지나치게 단순하다. 작품이 요구하는 문제의식마저 건져내지 못한 채 범작으로 남아 버렸다.
한편 영화 '대홍수'는 이날 19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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