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맨스의 아이콘인 레이첼 맥아담스가 샘 레이미 감독의 기괴하고 핏빛 가득한 세계관 속에 온몸을 던졌다. 억눌린 을의 위치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고단한 초상까지 강렬하게 투영했다.
업무 능력은 출중하나 홀대받던 직원 린다는 문명이 단절된 무인도라는 공간에서 야생의 생존 기술이 새로운 자본으로 떠오르자, 낙하산 CEO인 브래들리를 통제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현대 사회의 직함이 얼마나 허망한 가면인지를 팽팽한 긴장감 속에 녹여내며, 인간을 정의하는 본질적인 가치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 린다가 권력을 쟁취한 이후 보여주는 서늘한 공포정치는 영화 '슬픔의 삼각형' 속 애비게일의 행보를 연상시킨다. 권력의 이동을 담아낸 날카로운 감각적 사운드와 기괴한 미장센은 지배와 피지배라는 고전적인 비극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며 관객에게 묘한 설득력을 제공한다.
무인도에서 불을 피우는 원시적 능력이 자본이 되는 순간, 우리가 맹신하던 자본주의 권력은 한낱 종이 조각처럼 무력화되며 인간의 야수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사회적 합의가 증발한 자리에서 오직 실존적인 생명력이 지배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서늘하게 그려낸다.
슬픔의 삼각형의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이 권력의 추악함을 냉소적인 시선으로 관조했다면, 샘 레이미는 자신의 전매특허인 호러 공식을 활용해 계급의 충돌을 훨씬 더 경악스럽고 폭발적인 에너지로 스크린에 쏟아냈다. 이전 필모그래피에서 보았던 신체 훼손의 미학은 이 영화에서 사회적 위계의 파괴와 맞물리며, 관객에게 불쾌함과 통쾌함이 공존하는 기묘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것이다.
영화는 평생을 '을'로 살아야 했던 한 여성의 처절한 해방이기도 하다. 비평적 함의를 담으면서도 끝내 품격을 잃지 않는 이 영화의 마무리는, 상실과 고통의 잔해 속에서 피어난 환희가 얼마나 강렬한 여운을 남길 수 있는지 증명한다.
영화 '직장상사 길들이기'는 지난달 28일 개봉했으며 쿠키 영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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