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왜 아무것도 하지 못했나…'스픽 노 이블'이 남긴 잔혹한 질문

공포보다 더 무서운 것…폭력 앞에서 행동하지 못하는 인간의 심리

사진=KMDB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사진=KMDB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 이 기사에는 작품의 주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덴마크 영화 '스픽 노 이블(2022)'은 공개 당시 강한 논쟁을 불러온 작품이었다. 관객들은 불쾌함과 분노, 답답함을 동시에 토로했지만, 바로 그러한 감정 때문에 쉽게 잊히지 않는 공포영화가 됐다.

이 작품이 남긴 충격은 단순히 범죄자 부부의 잔혹성에만 있지 않았다. 이 작품의 진짜 충격은 위험 신호를 감지하고도 끝내 결정적 대응에 나서지 못하는 평범한 인간의 무력감에서 비롯된다.

여기서부터 해석의 영역이 작동한다. 작품이 남긴 인상만 놓고 보면 살인의 충격보다 '왜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에 더 가까워 보인다. 갈등을 피하고, 불편한 상황에서도 예의를 지키려는 태도가 오히려 파국을 부른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진짜 공포가 시작되는 것이다.

칼 포퍼가 말한 '관용의 역설'처럼 불관용적인 폭력 앞에서도 끝까지 예의를 지키려고 한 주인공들의 태도는 결국 자신들을 파멸로 이끌었다. 칼 포퍼는 무제한적 관용은 결국 관용 자체를 파괴한다고 보았다. 즉, 불관용적 존재에게까지 관용을 허용하면 결국 선한 질서가 무너진다는 논리다.

주인공 부부는 끝까지 예의와 관용을 유지했지만, 가해자 부부는 노골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며 질서와 규범을 파괴했다. 물론 포퍼는 정치와 사회 체제의 원리를 말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피해자들만 파멸하는 구조로 포퍼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프리드 리치 니체의 '노예 도덕' 개념에도 알 수 있듯이 폭력에 맞설 힘을 상실한 상태가 도덕적 우월성으로 포장될 때, 그 순응은 더는 선량함에 머무르지 않고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힘이 없는 자들이 자신의 무력함을 선으로 재정의하는 구조나 마찬가지다.

결말은 마치 일종의 윤리적 처벌처럼 읽히기도 한다. 자식을 끝내 지키지 못한 부모가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는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는 건 사실이다. 대신에 폭력 앞에서 물러서는 태도 자체가 어떻게 더 큰 폭력을 가능하게 만드는지 보여주는 실험 쪽으로도 읽힌다.

사진=KMDB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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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사진=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다행히 이 영화는 2년 만에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돼서 대중적인 스릴러로 다시 조정됐다. 아마 원작을 보고 분노가 폭발하여 판권을 사서 결말을 바꿔 버리자는 결단을 내린 것은 아닐까. '맞서 싸우면 바꿀 수 있다'라는 윤리적 판단이 빠른 시일 안에 나와서 참 기쁜 일이다.

'스픽 노 이블'은 단순한 공포물이 아니다. 에드먼드 버크의 말로 널리 알려진 "악이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유일한 조건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문장을 떠올리게 하는 잔혹한 우화다. 이 작품은 끝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태도가 반복될 때, 우리가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는 상태에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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