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극장가의 첫 천만 관객 돌파의 영예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게 돌아갔다. 1400만 관객을 향해 질주 중인 이 작품은 조선 왕조의 가장 뼈아픈 비극 중 하나인 단종의 삶을 스크린에 성공적으로 부활시켰다.
모두가 결말을 아는 역사적 사실을 다루면서도 이 영화가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영화는 권력의 희생양이었던 단종과 상상력을 덧입힌 촌장 엄흥도의 시선을 교차하며 깊은 연민과 묵직한 여운을 남겼다.
※ 이 기사에는 작품의 주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광천골의 촌장 엄흥도(유해진)의 천진난만한 기대감에서 출발한다. 유배 온 양반을 정성껏 모시면 훗날 재물 복과 자식들의 과거 급제가 뒤따를 것이라는 세속적이고도 소박한 믿음 때문이다.
엄흥도가 맞이한 인물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쫓겨난 어린 왕 단종(박지훈)이었다. '잘못 걸렸다'라는 엄흥도의 탄식은 이 영화의 첫 번째 웃음 포인트이자, 평범한 백성과 고립된 군주가 맺게 될 기묘한 인연의 서막이다.
스스로 곡기를 끊고 삶을 포기하려는 단종과 어떻게든 그에게 수저를 쥐여주려는 엄흥도 및 고향 사람들의 옥신각신하는 모습은 극의 초반 활력을 불어넣는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전개 속에서 감초 연기의 대가 박지환, 안재홍, 오달수의 앙상블은 극의 긴장을 부드럽게 이완시킨다. 특히 엄흥도를 연기한 유해진 특유의 에너지는 극 초반 다소 과장되고 민망할 정도로 넘쳐흐르지만, 후반부의 비극을 극대화하기 위한 정교한 포석으로 작용한다.

단종의 행보를 따라가는 과정은 괴로울 수밖에 없다.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유배지 청령포, 사육신의 죽음, 끝내 실패로 돌아간 금성대군의 역모 등 영화는 역사의 잔혹함을 피하지 않는다. 대신에 영화는 단종이 처음으로 호랑이를 잡는 장면을 시작으로 단순한 권력의 희생자가 아닌, 끝내 자신의 존엄을 지켜낸 인물임을 묘사한다.
단종으로 환생한 듯한 박지훈의 열연과 유해진의 에너지가 정면으로 맞부딪히는 후반부는 이 영화의 백미다. 사약을 마시는 대신 엄흥도에게 직접 목을 매어 달라는 단종의 마지막 부탁과 "조금만 참으십시오"라며 떨리는 손으로 줄을 당기는 엄흥도의 모습은 픽션이 가미된 영화적 상상력의 절정이다. 삼족을 멸한다는 위협 속에서도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의 역사적 사실이 겹쳐지며, 초반부 유해진의 모든 우스꽝스러운 행위는 단종의 넋을 기리는 숭고한 예술로 승화된다.
'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을 비운의 어린 왕이라는 짧은 키워드에서 해방시켜, 한 인간의 존엄과 이를 끝까지 지켜준 평범한 백성의 도덕적 신념으로 서사를 확장시켰다. 슬픔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끝내 묵직한 위로를 건네는 이 영화가 1400만을 넘어 더 많은 관객의 가슴에 닿기를 기대해 본다.

댓글 (0)
댓글 작성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