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레이] 한 남자의 심연에서 터져 나온 가장 벅찬 음악…'라라랜드'를 계속 보는 이유

숏폼 시대 속에서 다시 꺼내든 라라랜드, 그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파노라마

사진=KMDb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사진=KMDb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사랑도 이별도 손가락 한 번의 스와이프로 결정되는 초연결 시대다. 모든 감정이 휘발되고 쉽게 대체되는 오늘날에 가장 깊고 무거운 사랑의 기억을 갈망한다.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영화 '라라랜드'의 엔딩 시퀀스가 여전히 수많은 관객의 가슴을 저릿하게 만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영화의 마지막 10분은 단순한 뮤지컬 롱테이크 연출의 승리를 넘어 한 남자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온 가장 아름답고 처절한 추억의 시각화다. 우리는 왜 여전히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의 그 덧없는 상상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가.

우연히 들어선 재즈 클럽, 객석에서 운명처럼 다시 마주친 옛 연인 미아(엠마 스톤). 담담한 표정으로 피아노 앞에 앉은 세바스찬이 건반을 누르는 찰나, 스크린에는 오랫동안 가슴 밑바닥에 묻어두었던 거대한 감정의 파노라마가 폭발한다.

이 장면이 유독 짙은 먹먹함을 자아내는 것은 세바스찬이라는 인물의 지극히 내밀하고 감성적인 고백이 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삶의 치열함과 자신의 야망 속에서 가장 아팠던 첫사랑의 기억을 겹겹이 봉인해 둔다. 미아와 눈이 마주친 그 짧은 순간에 견고했던 둑이 무너지며 '만약 우리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이라는 거대한 우주가 펼쳐진다.

우리가 그 식당에서 키스하며 함께 나갔더라면, 파리로 떠나는 너의 곁에 내가 함께 있었더라면. 세바스찬의 머릿속을 스쳐 가는 이 가정법들은 후회나 미련이라기보다 지나간 사랑을 향해 바치는 가장 숭고한 헌사다. 현실에서는 단 몇 분에 불과한 연주 시간이지만 그의 심연 속에서는 미아와 함께 평생을 동반하는 찬란한 일생이 탄생하고 소멸한다. 이토록 절절한 남자의 순정을 이보다 더 황홀하게 묘사한 작품이 있었던가.

이 환상이 그저 흔한 신파로 전락하지 않는 이유는 이들의 이별이 돈이나 조건 때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아가 배우로 성공하고 세바스찬과 헤어진 것은 그가 가난한 재즈 피아니스트였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의 꿈을 가장 열렬히 지지했기에 도리어 각자의 길을 가야만 했던 꿈과 현실의 교차점에서 발생한 필연적 엇갈림이었다.

재즈 클럽을 열어야 했던 세바스찬과 파리에서 기회를 잡아야 했던 미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발목을 잡는 대신에 상대방이 찬란하게 빛날 수 있도록 밀어준 이들의 선택은 가슴 아프지만 지극히 성숙하다. 세바스찬의 상상 속 뮤지컬이 유독 눈물겨운 이유는 서로의 성공을 위해 기꺼이 포기해야만 했던 평행우주를 눈앞에 펼쳐 보이기 때문이다.

상상 속에서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미소 짓던 두 사람의 모습은 연주가 끝나는 순간 연기처럼 흩어진다. 클럽을 나서는 미아와 무대 위의 세바스찬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 미소에는 어떠한 원망도 없다. 그저 너의 꿈이 이뤄져서 다행이라는 안도, 내 인생 가장 불안했던 시절을 아름답게 채워주어 고맙다는 무언의 찬사다.

시간이 흘러도 세바스찬의 추억이 유효한 이유는 누구나 가슴속에 첫사랑의 환상 하나쯤은 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빠르게 소모되는 시대에 '라라랜드'는 한 남자의 건반 위에서 쏘아 올린 그 찬란한 10분의 환상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낭만의 무게를 다시금 일깨워 준다. 우리가 이 영화를 끊임없이 다시 꺼내 보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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