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과 의사 릴리안(조디 포스터)은 프랑스에서 거주하며 일하는 미국인 이민자다. 모든 환자와의 상담 내용을 녹음 파일로 보관할 정도로 꼼꼼한 사람이다. 꼼꼼하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객관적인 분석가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과연 이런 아카이브가 그녀에게 전문성을 부여하는 장치가 되는 것일까.
보통 의사라고 하면 객관적인 관찰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의사가 철저히 바깥에서 관찰하고 분석하여 객관적인 진단을 내리는 것이다. 불행히도 이제는 어느 누구도 이런 전제를 100% 믿는 사람은 없다. 프로이트도 경험한 것처럼 환자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를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불쾌하고, 누군가는 보호 본능을 자극할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유난히 기억에 남을 수도 있다.
프로이트의 이런 학구 정신 덕분에 우리는 이제 '역전이'를 알게 되었다. 본래 '전이'라는 것은 환자가 과거의 감정을 의사에게 옮기는 현상이다. 프로이트도 인정한 것처럼 의사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감정에 대한 영향을 받는다. 상처와 욕망, 콤플렉스 등 분석가의 무의식으로 환자에게도 반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어린 시절 버림받은 경험이 있는 의사라면, 같은 경험을 한 환자 때문에 과잉 반응을 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객관성이 무너지기 때문에 프로이트가 말한 것처럼 의사도 자기 분석이 필요하다.
릴리안은 정신과 의사로서 모든 환자를 정확하게 진단한다고 믿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9년 동안 상담을 받았던 폴라(비르지니 에피라)가 갑자기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은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처음 들려온 소식은 자살이었지만, 이후에 폴라의 가족이 릴리안의 책임으로 몰아가면서 사건은 복잡해진다. 흥미로운 점은 이 사건을 복잡하게 만든 인물이 릴리안 본인이라는 것이다.
릴리안은 당연히 폴라의 자살을 믿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대신에 전남편 가브리엘(다니엘 오테유)과 함께 아마추어적인 수사를 시작한다. 마침 폴라의 딸 발레리와 남편 사이몬(마티유 아말릭)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릴리안을 의심하고 있어서 명분도 있는 셈이다. 재밌는 점은 전남편 가브리엘의 태도에 있다. 그는 아무런 문제도 제기하지 않고 기꺼이 릴리안의 조력자로 나선다. 그저 철이 없는 것이 아니라 릴리안의 광기마저 안아주는 사랑과 존경을 드러내는 것이다.
릴리안의 상황은 사실 꽤 심각하다. 환자의 죽음을 외부로 돌리며 방어 기제로 쓰고 있고, 이유도 없이 눈물이 흐르며, 최면술사를 통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지금의 아들이 나치로 등장하는 모습을 통해 왜 지금 사이가 좋지 않은지 설파하는 것도 스스로 고립시키는 행동이다. 이건 마치 객관적인 진단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의사가 자기합리화에 빠져 고통스러운 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누군가 폴라를 죽였고, 그것을 반드시 밝혀내겠다는 서사를 스스로 만들어서 견뎌내는 것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의외로 이런 심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영화가 꽤 가벼운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폴라에 대한 집착, 전남편에 대한 미련, 아들과의 거리감, 삶에 대한 허무함이 최면을 통해서 하나의 드라마로 바뀐다. 릴리안의 무의식이 이야기 형태로 꾸며진 점도 그렇고, 전남편의 유쾌한 탐정 놀이, 여기에 토킹 헤즈의 '사이코 킬러'라는 곡 덕분이기도 하다. 다소 난해한 작품임에도 수사극을 표방한 과감한 전개와 프랑스와 영어를 오가며 열연하는 조디 포스터 덕분에 심심하지 않다.
다행히 영화는 릴리안의 자기모순을 비관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릴리안은 거대한 진실을 찾고 싶었지만, 결국 인간의 사생활은 작고 초라한 감정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프로이트의 시선으로 본다면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거창한 윤리나 논리보다 수치심과 죄책감일 때가 더 많을 것이다. '경청'하기 시작한 릴리안에게서 사랑과 존경이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편 영화 '파리의 사생활(A Private Life)'은 오는 15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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