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후기] '상자 속의 양'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전하는 AI 시대의 위로

차가운 휴머노이드에 투영된 부모의 뜨거운 상실감과 치유의 여정

사진=(주)미디어캐슬 제공
사진=(주)미디어캐슬 제공

이제는 AI와 매일 대화를 하고 위로받는 시대가 되었다. AI 연인과 친구 서비스를 원하는 현상까지 벌어진 마당이라서 인공지능과 로봇 테마는 이제 클래식한 문법이 되어 버렸다. '상자 속의 양'은 고레에다 히로카즈만의 따뜻하고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지만, 상상력이 현실을 앞질러가지 못한 경우라서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감독만의 감수성은 충분히 살아 있다. 죽은 아들의 외형을 한 휴머노이드에게 여러 감정을 느끼는 부모의 모습은 점점 애도의 과정으로 변화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AI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상실과 애도, 죄책감에 더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AI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A.I'가 나오던 시절에는 '로봇이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가'라는 보편적인 질문이 있었다. 앞서 일본에서도 '로봇 카니발'이라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로봇 소녀의 사랑을 다루기도 했다. 당시 분위기는 아주 낯선 감정이었으나, 21세기로 넘어오면서 '그녀'와 '엑스 마키나'부터 '컴패니언'까지 로봇의 주체성을 다루는 작품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AI와 매일 대화한다. '상자 속의 양'은 사실 AI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AI 시대를 재확인하는 것에 가깝다. 미래를 예측하는 SF가 아니라 현재를 반영하는 드라마에 그친다는 뜻이다.

영화가 심심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시대의 변화에서 오는 부분이 더 크기 때문인 것 같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들은 현대 사회에서 이미 현실이 되어 버렸다. AI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 의인화까지 하는 시대이니 영화가 보여주는 휴머노이드와 인간의 관계가 그리 놀랍지 않은 것이다.

대신에 이 영화를 부모의 애도에 초점을 두면 기존 감독의 영화들처럼 따뜻한 작품이 될 수 있다. AI에 대한 새로운 질문은 많지 않지만, AI라는 소재를 빌려서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특히 휴머노이드를 사고 현장에 데려가서 범인을 기억하는지 묻고, 죄책감까지 털어놓는 아버지를 지켜보고 있으면 감정은 점점 복잡해진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처럼 가족 드라마의 강점을 보여줬던 감독이 애초부터 AI를 기술적으로 볼 이유도 없었던 것 같다. 감독은 AI를 드라마의 장치로 사용했을 뿐이다. 이미 AI와 매일 대화하는 시대에 살다 보니 심심한 감정이 느껴질 수 있다. 대신에 상처 입은 인간과 감정이 결여된 AI가 서로를 보듬어주며 새로운 생태계를 묘사하는 부분은 여전히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한편 영화 '상자 속의 양'은 오는 10일 개봉하며 쿠키 영상은 없다.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댓글 작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