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가 던진 질문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슬픔과 고통도 모르는 유토피아에서 희망과 용기를 깨달을 수 없다는 설정이 요즘처럼 혐오, 갈등, 경쟁을 조장하는 현대 사회에서 얼마나 통할지 솔직히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인간들이 굳이 절망과 두려움을 통해 희망과 용기를 알고 싶어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대신에 고통이 동반된 결핍이 있어야 '사랑'이 가능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고심하게 된다.
유토피아 마을에서는 성인이 되기 전에 지구에 있는 '시초지'로 순례를 다녀온다. 시초지에는 우월하고 열등한 유전자들이 높은 벽을 두고 '분리 정책'이라는 것을 시행하고 있다. 데이지는 순례자들 중 일부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이 이상하여 직접 시초지를 찾아가고, 돌아오지 않고 있던 올리브라는 사람의 행보를 알게 되면서 충격에 빠진다.
'멋진 신세계'나 '가타카'처럼 디스토피아 문학이 계속 던져온 질문처럼 보인다. 대신에 김초엽 작가는 올더스 헉슬리처럼 우생학을 정면 비판하기보다 감성적으로 대처한다. 고통을 알고 나서야 인간다운 감정을 느끼는 캐릭터들이 나오지만, 유토피아 마을 사람들을 악인으로 그릴 생각이 없다. 어쩌면 그들 역시 나름 사랑과 선의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조금 더 복잡하다.
애니메이션은 김초엽 작가의 세계관을 좀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후반에 가서야 이름을 알 수 있었던 데이지가 친구 소피와 교신하는 것부터 유토피아 마을이 얼마나 공허한 곳인지도 강조하고 있다. 덕분에 원작 소설의 타임라인과 기획 의도까지 쉽게 알 수 있다.
대신에 '고통을 완전히 없애 버리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비교적 순수한 이 질문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 있게 됐다. 고통과 갈등, 혐오와 폭력이 없는 세계라면 누구나 단 하루라도 살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혐오를 놀이처럼 소비하는 시대라면 더 그렇다.
다행히 이 작품은 고통이 동반된 시초지를 긍정적인 시선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김초엽 작가도 불완전한 사람들이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는 순간들을 그려냈고, 애니메이션 역시 그 점을 정확히 짚어냈다. 결핍이 없다면 누군가를 간절히 붙잡을 필요가 없다. 결핍이 있으면 누군가의 따뜻한 온기와 말, 이해와 배려가 큰 의미를 갖게 되고 결국 사랑까지 이어진다.
그런 면에서 김초엽 작가는 SF 장르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믿는다. 사랑을 그저 단순한 로맨스의 과정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빅 브라더스가 나오는 체제를 거창하게 비판하기보다 정서적인 방향으로 밀고 나간 것이다.
종이 냄새를 좋아하는 텍스트 애호가라면 원작 소설의 여백이 좋을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애니메이션이 주는 선명함을 더 좋아할 수도 있다. 현실에 지친 사람들이 유토피아에 살고 싶어 하는 마음과 불완전해도 진짜 감정을 느끼고 싶어 하는 마음이 계속 부딪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긴 여운을 남기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충분히 좋은 SF물이다.
한편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오는 3일 CGV에서 단독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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