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룸'은 끝없이 이어지는 노란 벽지와 형광등, 불쾌한 백색소음으로 채워진 미지의 공간만으로도 불안감을 준다. 겉보기에 평범한 사무실처럼 보이지만 일상생활과 거리가 있는 기괴한 느낌의 공간들은 그 자체로도 공포를 전달한다.
주인공 클락(추이텔 에지오포)은 이혼당했고 건축가의 꿈을 이루지 못했으며, 지금은 초라한 가구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우스꽝스러운 선장 분장을 하면서 가구 세일을 진행하고, 혼자 있을 때는 음주와 자기 연민에 빠져서 살고 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처럼 증식하는 공간과 자존감이 무너진 남자의 만남은 그 자체로 훌륭한 은유를 내포하고 있다.
문제는 클락이 왜 백룸에 중독되는지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클락은 현실에서는 실패자였으나, 백룸 안에서는 자신만이 선택받은 탐험가처럼 느꼈을 것이다. 그가 오스만 제국의 선장이라고 하면서 현실 도피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벽 너머의 무한한 공간들은 거의 종교적 체험에 가까웠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정신과 의사 메리(레나테 레인스베)에게도 지도를 보여주며 증거를 가져오겠다고 큰소리를 쳤을 것이다.
영화는 클락이 현실을 버리고 미지의 공간에 잠식되는 과정을 보여줘야 마땅하다고 봤다. 가구 매장의 배치를 강박적으로 바꾸거나 백룸 구조를 미친 듯이 건축 도면처럼 그려대거나 밤을 새우면서 공간의 깊이를 계산하는 등 건축과 관련된 강박적인 모습들 말이다. 메리 역시 정신병이 있던 어머니의 기억만 던져놓고 회수를 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영화는 점점 묘하게 평면적이 된다. 공간에 잠식되면서 현실과의 경계가 붕괴되고, 집착과 광기를 여실히 보여줘야 하는데, 괴물과의 추격전과 음모 암시 정도로 빠져 버린다. 이럴 거면 '알.이.씨(REC)처럼 파운드푸티지로 호러로 화끈하게 가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케인 파슨스의 단편들이 무서웠던 것은 사실 설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카메라맨이 길을 잃으면서 공간에 압도당하고, 위협적인 존재는 정확히 보여주지 않는 불친절함이 꽤 매력적이었다. 영화는 이런 불친절한 전개 탓에 오히려 어정쩡해진 느낌이다.
흥미로운 점은 분명히 있다. 클락이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백룸 안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건 곱씹을수록 섬뜩한 대목이다. 선장 복장은 우스꽝스러운 코스프레지만, 백룸 안에서는 개척자처럼 느껴질 것이다. 영화가 이런 점을 더 밀어붙였다면 정말 섬뜩했을 것이다.
'백룸'은 직접 세트장을 찾아가고 싶을 정도로 공간 디자인과 분위기 모두 나쁘지 않다. 유튜브 원작의 세계관을 확장하려는 의도 역시 흥미롭다. 클라이브 바커의 '피의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 '드레드(Dread)'처럼 인간마다 어떻게 다른 공포를 전달할 것인지 보여준다면 더 매력적인 공포물로 다가올 것이다.
한편 '백룸'은 27일 개봉하며 엔딩 크레디트 이후에 나오는 쿠키 영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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